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다가오자, 여야 정치권은 기다렸다는 듯 '경선 룰' 변경에 골몰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책임당원과 일반 국민 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두고 '5대 5'냐 '7대 3'이냐를 놓고 수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선 더불어민주당도 1차 예비 경선 권리당원 100% 투표 방식 도입 등을 둘러싸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충돌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새로운 인물'을 외치며 국민의 뜻을 더 잘 반영하기 위한 '쇄신'인 양 포장하지만, 국민을 향한 변신이 아니라,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내부 권력 투쟁에 다름 아니다. 단 1표라도 더 얻으면 의석을 독식하고 2등은 모든 것을 잃는 '소선거구제'라는 낡은 외투를 걸친 채 치러지는 선거는 늘 '적대적 공생'의 반복일 수밖에 없다. 상대가 못하기만을 바라는 정치는 국가의 미래를 설계할 동력을 상실하고 지역의 살림살이나 균형발전이라는 본연의 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 지방선거에서 대구 동구의 한 후보는 단 18표가 모자라 낙선했다. 경북 곳곳에서도 1~2%포인트 차이로 수천 표의 민심이 '사표'가 되어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만약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었다면, 이 '18표의 주인공'들은 지금쯤 의회에서 지역주의를 깨는 새로운 목소리를 내고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승자독식 구조' 속에서 뿌리내린 지역 패권주의의 철옹성은 우리 민주주의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영남은 특정 정당, 호남은 또 다른 정당이라는 '불패의 진영'이 고착화되면서 유권자들은 후보의 역량이 아닌 정당의 깃발만 보고 투표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정당들은 오직 자기 진영의 표 결집에만 골몰하며 극단적인 대결 구도를 강화할 뿐이다.
이제는 이 '낡은 룰'을 과감히 폐기해야 할 때다. 한 선거구에서 2~5명의 당선자를 뽑는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면 거대 정당의 후광 없이도 소신 있는 비주류 인사나 전문성을 갖춘 인물들이 의회에 진입할 길이 열린다. 정당 역시 '무조건 이길 사람'이 아닌 '일 잘할 사람'을 공천해야 하는 경쟁에 직면하게 되며, 이는 자연스럽게 정치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진다.
이미 지난 지방선거에서 '수성구을' 지역을 비롯해 전국 기초의원선거 지역구 1천30곳 중 30곳에서 3~5인 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한 결과, 소수 정당의 후보 공천과 당선자 비율이 높아지는 등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기초의원을 비롯, 광역의원 선거로까지 확대된다면 2년 뒤 치러지는 총선에서도 도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때마침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꾸려진 만큼 지금이 적기다.
물론 중대선거구제의 성공을 위한 결정적 전제 조건이 있다. '한 선거구 내 정당별 공천 인원 제한'이다. 만약 인원 제한이 없다면 연고 정당이 해당 지역의 의석을 싹쓸이하거나, 거대 양당이 2, 3명씩 후보를 내 의석을 나눠 갖는 기득권 야합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따라서 한 정당이 1명의 후보만 내도록 제한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래야만 진정한 다당제가 실현되고 다양한 목소리가 지방의회에 스며들 수 있다.
문제는 기득권의 저항이다. 중대선거구제는 현역 의원들의 밥그릇에 직접적인 위협이기에 전면 도입은 번번이 좌절되어 왔다. 따라서 가장 상징적이고 효과적인 곳에서부터 용감한 실험을 시작해야 한다. 바로 보수의 심장, 진보정당의 성지인 대구와 광주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구의 중대선거구제가 호남 기반의 인물을 당선시키고, 광주의 중대선거구제가 영남 기반의 인물을 의회로 보내는 정치적 반전을 이끌어 낸다면, 제도의 변화는 물론 국민 통합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