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으로 머물게 한다는 정부 구상, 대구경북에 다시 바람 불까

입력 2026-01-19 11:00:00 수정 2026-01-19 12: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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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한옥 건축 활성화' 시동…중소도시 체류형 전략 제시
지원은 이어지지만 수요는 정체…경북형 한옥, 전환점 맞나

전북대 캠퍼스 내에 있는 한옥카페의 모습. 전북대 한옥학과 학생들이 실습으로 제작한 건물이 실제 교내 건축물로 쓰이고 있다. 2026.1.16. 홍준표 기자
전북대 캠퍼스 내에 있는 한옥카페의 모습. 전북대 한옥학과 학생들이 실습으로 제작한 건물이 실제 교내 건축물로 쓰이고 있다. 2026.1.16. 홍준표 기자

한옥을 통해 '즐기고 머무는 지역'을 만들겠다는 정부 구상이 나오면서 대구경북에서도 한옥 건축이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현장에서는 "정책의 방향은 맞지만, 이를 실제로 떠받칠 인력과 구조는 여전히 취약하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19일 "한옥 건축을 중소도시 균형성장의 핵심 수단으로 삼아 '가보고 싶은 중소도시'를 늘리겠다"는 정책 방향을 밝혔다. 한옥을 주거를 넘어 숙박·문화·체험 공간으로 확장하고, 전문 인재 육성, 건축 기준 현대화, 자재 표준화, 산업 클러스터 조성까지 아우르는 종합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17일 전북대학교 고창 한옥 특성화 캠퍼스에서 교육생들이 한옥 정자 지붕을 만드는 모습. 2026.1.17. 홍준표 기자
17일 전북대학교 고창 한옥 특성화 캠퍼스에서 교육생들이 한옥 정자 지붕을 만드는 모습. 2026.1.17. 홍준표 기자

◆"못 하나 없이 세운다"…한옥은 '손의 산업'

17일 찾은 전북대 고창 한옥 특성화 캠퍼스. 비계(가설 발판) 위에 오른 교육생들이 정자 지붕에 들어갈 서까래를 하나하나 맞추고 있었다. 한옥은 못을 거의 쓰지 않는다. 나무를 깎아 끼워 맞추는 '결구' 방식이다. 미세한 오차 하나가 지붕 전체의 균형을 흔들 수 있어 같은 작업을 수차례 반복해야 한다.

사포로 나뭇결을 문지르고, 목쐐기를 두드려 넣는 동안 작업장은 톱밥 냄새로 가득 찼다. 한 교육생은 "이론보다 손이 먼저 기억해야 하는 건축"이라고 말했다. 한옥은 설계·시공·유지관리 전반에서 숙련을 요구하는, 철저히 사람 중심의 건축이다.

남해경 전북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한옥은 효율만 놓고 보면 불리해 보일 수 있지만 구조와 원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건축이라는 점에서 경쟁력이 있다"며 "현대 건축이 기술과 구조를 마감재로 감추는 데 비해 한옥은 기둥과 보, 지붕 구조가 어떻게 중력을 이기고 서 있는지가 공간 자체에 드러난다. 이런 '보이는 건축'은 공간에 대한 이해와 감동을 동시에 주기 때문에 주거를 넘어 숙박과 체험, 문화 공간으로 확장할 잠재력이 크다"고 설명했다.

전주 덕진공원 내 연화정도서관. 2026.1.16. 홍준표 기자
전주 덕진공원 내 연화정도서관. 2026.1.16. 홍준표 기자

◆ 체류형 한옥의 가능성…연못 위 도서관이 보여준 답

이 같은 가능성이 실제 공간으로 구현된 사례가 전북 전주시 덕진공원의 연화정(연화장도서관)이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ㄱ'자 형태의 단층 한옥이 모습을 드러낸다. 팔작지붕 아래 도서관과 문화공간, 전망대가 어우러진 이 공간은 2022년 개관 이후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찾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곳을 설계한 임채엽 태권브이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정남향 배치에서 앞마당과 뒷마당의 온도 차를 이용해 바람이 흐르도록 설계했고, 일부 기둥은 물속에 박아 연못 위에 떠 있는 느낌을 살렸다"며 "한옥은 과거의 양식이 아니라 지금도 충분히 쓰일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정부 역시 이런 사례를 한옥 정책의 확장 모델로 보고 있다. 국토부는 국정과제의 하나로 한옥형 디자인 특화 명소 확충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더 나아가 한옥 설계부터 자재 제작·유통, 전문 교육, 시공·유지보수까지 한 곳에서 이뤄지는 '한옥 건축 산학연 협력단지(클러스터)' 조성 방안도 구상 중이다. 이 같은 내용은 제3차 건축자산 진흥 기본계획(2026~2030)에 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남해경 전북대 건축공학과 교수가 16일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한옥 건축 기법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2026.1.16. 홍준표 기자
남해경 전북대 건축공학과 교수가 16일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한옥 건축 기법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2026.1.16. 홍준표 기자

◆경북의 현실…"지원은 있어도, 짓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경북에서는 아직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북도는 2010년대 중반부터 '경북형 한옥' 모델을 개발하고, 한옥 신축 시 최대 4천만원을 지원하는 정책을 이어왔다. 도청 신도시 한옥마을, 한옥형 호텔, 대규모 한옥 타운 조성 등 야심 찬 청사진도 제시했다.

그러나 상당수 계획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저렴하고 편리한 한옥'을 표방했지만 실제 수요층이 체감할 만큼의 비용 절감과 생활 편의 개선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북도의 한옥건립지원사업 자료를 보면 2016년 이후 9년간 지원된 한옥은 111동에 그쳤다. 최근에는 2024년 3동, 작년 4동으로 오히려 줄었다.

경북도 관계자는 "일반 주택은 평당 600만원 수준이지만 한옥은 1천만원을 훌쩍 넘는다"며 "결국 실거주 목적보다는 고액 자산가의 별장, 주말주택 같은 취미용 건축에 머무는 구조"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국토부 정책이 방향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주거용 단독 한옥에 머물렀던 기존 정책에서 벗어나 체류형 관광과 지역 명소 조성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정부가 한옥 건축 기준을 내진·내화·무장애 기준까지 포함해 현대화하겠다고 밝힌 점 역시 실질적인 장벽을 낮출 수 있는 요소로 꼽힌다.

여기에는 조건이 따른다. 신병욱 전북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짓는 사람과 유지할 구조가 없으면 옛 것에 그칠 수밖에 없다"며 "한옥을 '지키고 보전해야 할 것'에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쓰이는 공간', '머무는 산업'으로 전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한옥 전문가는 "경북도가 그동안 축적한 표준설계도와 행정 경험을 정부 정책과 결합한다면 대구경북이 다시 한옥 실험의 중심지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한옥은 이미 경주를 필두로 한 경북의 중요한 문화 자산이다. 문제는 이를 현재의 삶과 시장에 맞게 재구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6일 전북 전주 덕진공원 내 연화정도서관에서 설계 과정을 설명하는 임채엽 태권브이건축사사무소 대표. 2026.1.16. 홍준표 기자
16일 전북 전주 덕진공원 내 연화정도서관에서 설계 과정을 설명하는 임채엽 태권브이건축사사무소 대표. 2026.1.16. 홍준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