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구미 '기획 부도' 의혹 A사 회생?…협력사들 "우리도 살려달라"

입력 2026-01-15 16:56:58 수정 2026-01-15 18: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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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액 240억원 넘어, 지역 협력사 연쇄 도산 우려
A사 "회생을 통해 채무를 변제하겠다" 해명
협력사 "고의적인 기획 부도이자 기망" 주장

15일 구미시 산동읍 하이테크밸리(국가5산단) 내 A사 앞 도로변에 협력사 비상대책위원회가 건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조규덕기자
15일 구미시 산동읍 하이테크밸리(국가5산단) 내 A사 앞 도로변에 협력사 비상대책위원회가 건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조규덕기자

15일 오후 3시, 구미 하이테크밸리(국가5공단)에 위치한 A사 공장 주변에는 협력사 비상대책위원회가 건 현수막이 10여장 내걸려 있었다.

"A기계 회생? 우리도 살려달라", "협력사는 숨통이 막힌다" 같은 문구들이 줄지어 걸리면서 40년 향토기업의 무너진 신뢰를 그대로 드러냈다. 잠시 후 법원 관계자 차량이 공장 안으로 들어서며, 기업의 생사를 가를 현장검증이 시작됐다.

이날 현장검증은 대구지방법원 제1파산부 주심판사가 직접 공장의 가동 여부, 사무 공간, 종업원 근로 의욕 등을 확인해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은지를 판단하기 위해 진행됐다. 채권자인 협력사 관계자들은 현장에 동행할 수 없어, 현장검증에 앞서 현수막을 통해 입장을 대신했다.

비대위에 따르면 A사는 지난해 12월 9일 회생 신청을 한 상태에서도, 금지 명령이 내려진 16일까지 이를 숨긴 채 협력사에게 제품 입고를 독촉했다.

비대위는 이를 의도적 행위로 본다. 사측은 회생 절차를 밟으면서도 제품 완성 전부터 "빨리 입고하라"고 압박했고, 이후 문을 닫으며 법원의 보호막 뒤로 숨었다는 것이다.

어음 부도 시점도 의심을 키운다. 3개월 만기 어음들이 회생 개시일인 12월 16일에 맞춰 한꺼번에 부도 처리됐다는 게 비대위의 주장이다.

현재 피해 협력사는 27곳, 피해액은 240억원을 넘어섰으며, 전체 156개 채권자를 포함한 부채는 700억원대로 추정된다. 특히 계약서나 발주서 없이 '신뢰'만으로 납품된 ESS(에너지저장시스템) 6호기 장비마저 회생 자산으로 묶이면서 협력사들은 자신들의 자산을 눈앞에 두고도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A사 사태는 지역 경제의 불안한 단면을 드러낸다. 지난해 1~11월 대구지법에 접수된 법인 회생은 94건, 파산은 90건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며, 법원은 '회생부'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A사처럼 제도가 악용될 경우 원금의 최대 90% 탕감과 나머지 10년 분할 상환 구조는 영세 협력사에게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A사 측은 "투자 유치 실패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회생을 통해 채무를 변제하겠다"고 밝혔지만, 협력사 측은 "원청 대기업으로부터 이미 대금의 90%를 받고도 하청 결제를 막은 것은 명백한 기망"이라고 맞서고 있다.

지역 경제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한 기업의 회생 여부를 넘어, '향토기업'이란 이름 뒤에 감춰진 불공정 거래와 제도의 허점을 드러낸 사례"라며 "제도 개선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