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 외치며 족벌정치한 베네수엘라의 '네포티즘'

입력 2026-01-08 15:49:27 수정 2026-01-08 19: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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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시와 호르헤 로드리게스 남매 서열 1·2위
중국·북한 등 혁명동지 자녀에게 요직 안겨
하시나 방글라데시 전 총리, 현대판 음서제
일본도 대를 이어 지역구 세습, 정계 입문

5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국회의사당을 나서고 있는 베네수엘라 주요 요인들. 사진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로페스 국방장관, 디오스다도 카베요 내무장관,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 게라 의원(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의 아들), 호르헤 로드리게스 국회의장. 로이터 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국회의사당을 나서고 있는 베네수엘라 주요 요인들. 사진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로페스 국방장관, 디오스다도 카베요 내무장관,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 게라 의원(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의 아들), 호르헤 로드리게스 국회의장. 로이터 연합뉴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가 미국으로 압송되면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된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과 그녀의 오빠 호르헤 로드리게스 국회의장의 족벌정치에 국제사회의 눈이 쏠리고 있다. 변호사 출신인 그녀가 정부 관료로 이전까지 보여준 능력에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적잖은 탓이다.

그녀의 이력은 이채롭다. 그녀의 부친 호르헤 안토니오 로드리게스는 사회주의자로 좌익 게릴라 운동 지도자였다. 정신과 의사 출신인 오빠 호르헤 로드리게스는 부통령을 거친 현역 국회의장이다. '네포티즘'을 떠올리는 건 수순이다. 조카를 뜻하는 라틴어 '네포스(nepos)'에서 유래한 '네포티즘'은 혈연관계에 있는 이들을 정부 요직에 앉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가 정계에 발을 디딘 건 '반미 투사'로 통칭되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 시절이었다. 부친의 혁명적인 활동과 연결 짓지 않을 수 없다. 그녀가 재무장관, 석유장관 등 서민생활과 직결되는 주요 장관직을 거치는 동안 해외로 떠난 국민들의 숫자는 국제난민기구 추산 800만 명에 육박한다.

중국, 북한 등에서는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일명 '혁명동지'의 자녀에게 요직을 안긴다. 중국의 '태자당'이 그렇다. 하방 생활을 하는 등 적잖은 고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태자당의 일원이었다. 마오쩌둥의 대장정에 공이 컸던 부친 시중쉰의 음덕이 없었다면 중국에서 엘리트로 불리는 공산당원이 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차례 숙청설이 나돌던 북한의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네포티즘을 부인하기 어렵다. 아버지 최현 덕분이다. 김일성을 도와 6.25 남침 때 북한군 지휘관으로 참전한 이력을 사골처럼 우려내며 건재를 과시한다.

네포티즘이 기본값처럼 보이는 곳도 있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 국가들이다. 방글라데시는 현대판 음서제를 국가 정책으로 시행하려다 총리가 쫓겨났다. 2024년 공무원 채용 정원의 30%를 독립전쟁 참전 유공자 자녀에게 할당하는 제도를 부활시켰던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는 대규모 시위에 떠밀려 권좌에서 내려왔다. 그녀 역시 독립 영웅이자 국부로 추앙받는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 초대 대통령의 딸이다.

지난해 네팔 정국을 뒤흔들었던 반정부 시위도 결이 비슷하다. 2008년 공산혁명으로 왕정을 붕괴시킨 집권세력은 부정에 둔감했다. 네팔에서 부유한 부모 아래 태어난 건 능력에 속했다. 요직에 그들의 친인척이 자리 잡았고, 일부는 자신들의 호사를 자랑삼아 SNS에 올려 위화감을 조성했다. 정권 몰락을 당긴 불씨였다.

일본 도쿄 방위성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 로이터 연합뉴스
일본 도쿄 방위성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 로이터 연합뉴스

선진국에도 네포티즘의 그림자는 남아있다. 일본은 중의원 선거에서 선대의 지역구를 이어받는 경우가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이 사례로 꼽힌다. 아버지 고이즈미에 이어 가나가와현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4대째다. 오랜 기간 일본 지역 구도의 근간이 됐던 번(藩)과 불가분의 관계다. 번을 다스리던 다이묘(영주)가 대를 이어 다스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