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김혜령] 택시 기사님의 한마디, 중심을 다시 묻다

입력 2026-01-08 12:04:31 수정 2026-01-08 18: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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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며칠 전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서울역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이 시간대의 택시는 대개 정치 이야기가 흐르기 마련인데, 그날은 달랐다. 라디오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사님은 백미러로 내 큰 가방을 힐끗 보더니 악기를 하느냐고 물었다. 바이올린을 연주한다고 하자, 반가운 듯 웃으며 베토벤 이야기를 꺼냈다. 특히 교향곡 9번 '합창'을 들으면 인간에 대한 경외심이 생긴다고 했다. 여러 성부들이 얽히고 겹치면서도 결국 하나의 위대한 음악으로 완성되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건 정말 천재의 영역 같다고도 했다. 그 말에는 설명하려는 욕심보다 음악 앞에서 느끼는 순수한 감탄이 담겨 있었다.

그 곡을 연주해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자, 기사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런 말을 했다. 자기는 음악회가 끝나고 연주자들이 박수를 받는 장면을 볼 때마다 다른 생각을 해본다고 했다. 연주가 끝나면 무대 위 스크린에 연주자가 아니라 작곡가의 얼굴이 떠오르는 장면 말이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클래식 음악에서 중심은 누구여야 하는가, 라는 질문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정직하게 느껴졌다. 클래식 음악을 만든 사람은 작곡가이고, 연주자는 그 음악을 오늘의 시간으로 불러오는 존재다. 악보에 적힌 음들은 연주자의 손을 통해 비로소 소리가 되지만, 그 출발점은 언제나 작곡가의 사유와 고독한 시간이다. 기사님의 생각은 복잡한 이론 없이도 클래식의 본질을 단순하게 짚고 있었다.

요즘 공연장에서는 연주자의 얼굴이 음악만큼이나 중요해졌다. 스타를 전면에 내세운 기획이 늘고, 공연 뒤에는 사인회나 토크가 이어진다. 음악이 낯선 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연주자의 서사가 필요해진 시대라는 것도 이해한다. 다만 그럴수록 가끔은 묻게 된다. 우리는 음악을 보러 가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보러 가는 것인지. 박수의 방향이 음악에서 사람으로 옮겨갈 때, 클래식이 지니고 있던 고유한 긴장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20세기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중에는 연주가 끝나면 인터뷰를 사양하고 조용히 뒷문으로 퇴장하던 인물도 있었다. 음악 외의 것은 남기고 싶지 않았다는 태도였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낯설고, 어쩌면 불친절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남아야 할 것은 연주자가 아니라 음악이라는 단단한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서울역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리며 나는 기사님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연주가 끝난 뒤, 작곡가의 얼굴이 무대 위 스크린에 떠오르는 장면. 그 생각 속에는 클래식 음악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로 돌아가려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힌트가 들어 있었다. 그날 기사님의 생각은 클래식을 다시 보게 했을 뿐 아니라, 무엇이든 중심을 다시 묻게 했다. 박수의 끝에서 우리가 다시 음악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무대는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