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수종 리엔경제연구소장(경제학박사)
실리콘밸리가 국가 안보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 한국 방산·산업 구조와의 구조적 유사점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민간 기술 활용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 같은 것이다. 하지만 민간 혁신을 대체제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국방 기술 혁신에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실리콘밸리는 1930년대 이후 스탠퍼드 대학과 미국 국방부의 연구·자금 지원이 결합해 첨단 기술 스타트업이 탄생한 결과다. 1993년 여름이었다. 당시 빌 클린턴(Bill Clinton) 대통령의 국방장관 르 애스핀(Les Aspin)과 국방부 차관이던 윌리엄 페리(William Perry)는 국방 산업 지도자들을 펜타곤으로 초청해 만찬을 열었다. 1990년 독일 통일과 1991년 구 소련의 붕괴로 이제 냉전은 끝났고, 연방 예산 가운데 국방 예산은 더 이상 예전 같지는 못할 것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더 이상 소련이라는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방 예산의 지속적 증가는 정당화될 수 없었고, 산업의 통합이 불가피하다는 메시지였다.
이 회동을 당시 미국의 항공우주·방산 기업 마틴 마리에타(Martin Marietta Corporation)의 CEO였던 노먼 어거스틴(Norman R. Augustine)은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이라고 불렀다. 이 기원담에 따르면, 국방부는 산업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동시에 방치함으로써 오늘날 이 분야를 지배하는 경직된 거대 기업들을 만들어냈고, 신생 기술 기업들이 경쟁할 수 있는 경로를 차단했다.
미국은 위기 상황에서 핵심 군수 물자를 신속하고 대규모로 생산할 수 없다. 실상 미국의 방산제도가 망가져 있다. 2025년 기준으로 미국의 국방비 지출(명목달러 기준 약 8,950억 달러)은 세계 2위부터 10위까지 국가들의 합(명목달러 기준, 약 9,354억 달러)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물론 추정 기관마다 미국이 다음 9개국 합보다 국방비 지출이 많다는 추정도 있다. 하지만 '규모의 경제'가 '범위와 밀도의 경제'를 압도하지는 못한다는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미국 국방산업은 현대화와 생산 양 측면에서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03년 설립되어 대규모 데이터 통합, 분석, 시각화 솔루션을 제공하는 팔란티어 CEO인 알렉스 카프(Alex Karp), 2017년 창업한 인공지능(AI) 중심 방위 시스템 및 무기 체계 개발 스타트 기업인 안둘립 창립자, 팔머 럭키(Palmer Luckey), 2022년에 설립된 미국의 방위·우주 기술 스타트업으로, 미래형 군사·우주 시스템 개발에 집중하는 신생 방산 기업 아메리칸 다이너미즘(American Dynamism)의 책임자인 캐서린 보일(Katherine Boyle) 등은 이러한 상황의 원인을 과도한 정부 규제와 개입의 탓으로 돌린다. 그들은 자금이 기존의 대형 프로그램과 극히 소수의 주계약업체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고 주장한다. 일부는 "최후의 만찬"을 조명하며, 이 시점을 기점으로 국방 관련 기술과 제조의 조달 속도는 느려지고 요구 사항은 과도해졌으며, 위험 회피적인 계약 구조가 혁신을 억눌러왔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지적은 국방산업의 쇠퇴를 변명하기엔 편리하지만 부정확하다.
애스핀과 페리가 만찬을 열 당시, 미국의 방산은 이미 글로벌화와 미국 경제의 금융화, 1986년 이후의 국방 예산 삭감, 그리고 정부를 민간 기업처럼 재편하려는 광범위한 시도에 의해 약화돼 있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 기술 리더들이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바로 그 조치들을 반복적으로 실행하고 있었다. 산업 규제를 완화하고 생산 역량을 민간에 외주화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오늘날 산업을 괴롭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켰다.
신속한 조달과 민첩한 개발은 필요하다. 하지만 속도만을 중시한 개혁은 적합성, 필요성, 비용 통제를 희생시킬 위험이 있다. 국가 방위는 결코 정상적인 경쟁 시장이 아니며 앞으로도 그럴 수 없다. 국가 방위에는 대량 생산과 위기 대응 능력, 군 특화 기술 관리, 시장 변동에 견디는 핵심 역량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의 구조적 역량과 전문성 강화가 필수다. 국방 혁신을 시장에 맡기기보다 시장을 관리할 국가를 먼저 혁신하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결국 정부는 경쟁을 설계하고 관리해야 하며, 언제 민간을 활용하고 언제 공공 역량에 투자해야 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국방 혁신의 적은 관료주의가 아니라 국가가 스스로를 약화시키는 착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