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 대신 승계…M&A가 고령 중소기업의 출구가 되고 있다
중소기업 승계 문제는 더 이상 일부 기업의 사적 고민에 그치지 않는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흑자를 내면서도 문을 닫는 '조용한 폐업'이 늘고 있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60세 이상 CEO가 운영하는 중소기업은 약 236만 개에 달한다. 60세 이상 CEO의 비중은 지난 10년간 2.4배로 늘어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60세 이상 CEO 중소기업 67만5천개는 후계자가 없어 지속 경영이 어렵다고 추정된다. 문제는 이들 기업 상당수가 기술과 거래처, 고용을 유지한 채 운영되고 있음에도 승계 대안을 찾지 못해 폐업을 고민한다는 점이다.
◆기업 승계 포기 않도록
많은 중소기업 대표들은 여전히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길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자녀 승계를 고려하지 않는 중소기업의 40% 이상은 승계할 자녀가 없거나, 자녀의 승계 거부, 경영 역량 부족 등을 이유로 가업승계를 포기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60% 이상은 전문경영인 영입이나 기업 매각 등 제3자 승계를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승계 방식이 '혈연 중심'에서 '경영 연속성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1월 기술보증기금 내에 'M&A지원센터'를 설치했다. 자녀승계가 어려운 고령 CEO를 대상으로 M&A를 통한 제3자 기업승계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센터는 M&A 거래정보망 운영, 중개 지원, 파트너스 네트워크 구축, 인수자금 보증, 기술보호 지원 등을 한 곳에서 제공하고 있다. 특히 M&A 협상 과정에서 기술 탈취를 예방하기 위한 TTRS(기술자료 거래기록 등록 시스템)를 연계해 중소기업의 불안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실제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A사는 2002년 설립 이후 23년간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영위해 온 기업이다. 기술력과 거래 기반을 갖췄지만, 후계자 부재로 향후 경영 지속성에 고민이 깊었다. 결국 사업 확장을 추진하던 동종 업계 중소기업에 회사를 매각하는 방식으로 승계를 선택했다. B사 역시 2000년부터 25년간 폐기물 처리업을 운영해 온 기업으로, 자녀승계가 여의치 않아 동종 업종의 중소기업에 회사를 넘겼다.
이 과정에서 기술보증기금은 피인수 기업과 인수 희망 기업의 경영진 면담, 현장 조사 등을 통해 M&A 컨설팅을 제공했다. 인수 자금에 대해서는 보증을 연계해 거래 성사를 뒷받침했다. 두 기업 모두 오랜 기간 축적된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인수 기업에 인계하는 동시에, 기존 종업원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M&A로 폐업 않고 기업 승계
전문가들은 M&A를 통한 기업승계가 폐업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M&A 전문기업 HNK파트너스 허수복 대표는 "고령 CEO 중소기업 상당수는 수익성과 기술을 갖추고도 승계 문제로 문을 닫는 선택을 고민한다"며 "제3자 승계는 단순 매각이 아니라 기업의 생명선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M&A를 통한 기업 승계는 결코 '간단한 매각'이 아니다. 기업들은 승계 이후 가장 큰 부담으로 노후 설비와 조직 체계를 꼽는다. 생산 설비 교체와 경영 시스템 정비에 들어간 비용은 사실상 제2의 창업 수준에 가깝기 때문이다. 인수 후 통합(PMI) 과정에서 인사·업무 프로세스를 정비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반대로 M&A를 고민하다가 주저한 기업들도 적지 않다. 중소기업 CEO들이 꼽는 가장 큰 걸림돌은 정보 부족과 신뢰 문제다. 매각 의사를 공개할 경우 핵심 인력이 이탈하거나 거래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 때문에 개인적 인맥을 통해 제한된 정보를 탐색하다가 시간과 비용만 허비하는 사례도 반복되고 있다.
비용 부담 역시 만만치 않다. M&A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업 소개 자료인 티저(Teaser Memorandum) 제작에만 수천만 원이 소요된다. 기업가치 평가는 건당 최소 2천만 원, 재무·세무·법률 실사를 진행하면 3천만 원 안팎의 비용이 추가된다. 여기에 중개 수수료는 거래 금액의 2~3% 수준이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M&A 자체가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존 가업승계 정책은 자녀에게 회사를 넘기는 경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친족 승계가 불가능한 기업에는 사실상 선택지가 없었다. M&A를 통한 제3자 승계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준비부터 사후 성장 단계까지 정책 지원을 연계하겠다는 것이 이번 대책의 핵심이다.
일본 사례는 정책 설계의 참고 지점으로 제시된다. 일본은 초고령 사회 진입 이후 M&A형 기업승계 정책을 적극 추진하면서 경영자 연령대가 낮아지고 흑자 폐업 비율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우리나라 역시 구조적으로 유사한 산업 환경을 가진 만큼, 제도적 장치를 통해 승계 공백을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성과를 단정하기보다는 제도 기반 마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김정주 중소기업전략기획관은 "고령화 시대에서 원활한 기업승계 문제는 단순히 개별 기업 존폐 차원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고용 안정에서 중요한 정책과제"라는 점을 강조하며, "자녀승계가 곤란한 중소기업이 M&A를 통한 제3자 기업승계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특별법 제정과 지원인프라 구축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