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다됐는데…미취업 뒷바라지 힘겨운 부모들
전문가 "부모, 자식 탓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해야"
"자녀가 대학만 가면 끝일 줄 알았습니다. 남편 퇴직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몇 년째 자녀 취업 뒷바라지까지 해야 하니 가계 부담은 물론 정신적 부담도 큽니다."
자녀의 미취업으로 부모 세대가 느끼는 불안의 배경에는 과거 자신의 취업 경험과 지금의 현실 사이에 놓인 간극이 자리하고 있다. '대학 졸업=취업'이라는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으면서, 중산층 가정일수록 자녀의 장기 미취업은 곧바로 가계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생활비와 주거비 지원은 물론, 자녀의 좌절과 불안을 함께 떠안아야 하는 정서적 부담도 적지 않다.
주부 A씨에게 '취업 걱정'은 더 이상 자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 국립대와 서울권 대학을 졸업한 두 딸을 둔 그는 몇 년째 자녀들의 진로 문제로 마음을 졸이고 있다. 대학 입학 당시만 해도 성적이 우수했던 만큼 취업에 대한 걱정은 크지 않았다. 좋은 대학에만 가면 자연스럽게 취업의 길이 열릴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지역 국립대를 졸업한 큰딸은 5년 전 얼어붙은 취업시장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신 뒤 고시 준비로 방향을 틀었다. 인서울 대학을 졸업한 둘째 딸 역시 정부기관 인턴을 전전했지만 정규직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졸업 후 2년째 구직 상태다.
A씨는 "졸업 후 몇 년 동안 취업 뒷바라지를 하는 게 이제는 기본처럼 됐다"며 "미취업 청년들이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많아 부모로서 느끼는 경제적·정서적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불안은 대학 졸업 이후에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고교 입시 관련 맘카페에서는 '입시를 넘어서 취업까지'를 걱정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입시가 끝나기도 전에 전공 선택과 취업 전망을 놓고 고민하는 부모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한 학부모는 "입시라는 큰 관문을 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달려왔고 수능도 치르고 결과도 나왔는데, 벌써 다음 걱정이 시작됐다"며 "서울권 대학이라 학비와 생활비 부담은 큰데, 취업 문이 좁은 문과 계열이라 답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전과나 복수전공을 미리 고민해보라고 했더니 아이가 아직 입학도 안 했는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며 크게 반발하더라"며 "부모 마음과 아이 생각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고 했다.
이과 계열이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또 다른 학부모는 "이과이긴 하지만 생명 관련 전공이라 취업이 잘될지 벌써부터 걱정"이라며 "반수를 생각해보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단호하게 거절당했다"고 전했다. 그는 "여러 활동을 많이 해서 좋은 곳에 취업하겠다는 말만 반복하는데, 부모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를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청년 고용시장의 구조적 경색이 장기화되면서 이른바 '캥거루족' 현상은 불가피한 결과라는 것이다. 취업난은 결혼과 출산 기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사회 전반의 불안으로 확산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박용진 가족사랑정신과의원 원장은 "장기적인 노동시장 침체라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미취업 청년뿐 아니라 이들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부모들의 불안감도 점점 커지고 있다"며 "이는 부모나 자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취업 여건이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려운 만큼, 가족 간 서로를 격려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불안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