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팡?' 쿠팡 키운 건 팔할이 민주당인데요?

입력 2025-12-29 07:30:00 수정 2025-12-29 09:3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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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주차장에 주차된 쿠팡 배송 차량.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주차장에 주차된 쿠팡 배송 차량. 연합뉴스

지난해 쿠팡 실적을 두고 자체 환율 환산 기준 유통업계 최초 매출 40조원에 영업이익을 6천억원 달성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근 지표만 떼어 놓고 보면 이른바 '유통 공룡'이자 대표 유통업체가 됐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쿠팡이 2014년 로켓배송을 시작하고 지난해까지 총 11년 간 번 돈이 총 -5조원이기 때문이다. 적자 그 자체다.

국민의힘 소속 김영환 충북지사가 2009년 민주당 소속으로 재보궐선거에 출마했던 당시 포스터. 매일신문 DB

상황이 이런데 개인정보 노출 사건으로 쿠팡은 최근 매출만 부각되며 정치권에서 '악마화' 대상이 됐다. 최민희 의원과 노종면 의원 등 민주당 의원이 쿠팡을 탈퇴하는 이른바 '탈팡' 행렬에 동참하며 악마화에 가세했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마중물 역할이 없었다면 쿠팡은 없었는데 탈팡쇼를 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뒷말이 나온다. 실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민주당이 쿠팡 성장의 포석을 놔줬기 때문이다.

◇민주당발 대형마트 규제 직후 로켓배송 탄생

쿠팡 로켓배송은 2014년 탄생했다. 그 전까지 유통을 책임 진 건 대형 마트였다. 사람들은 주로 대형 마트에서 장을 봐 살림을 꾸렸다. 당시엔 24시간 마트도 많았다.

그러다 마트를 규제해야 전통시장이 산다는 이른바 마트 규제법 도입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2011년 12월 '마트 규제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마트 강제 휴업과 24시간 영업 금지가 담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었다.

이시종 전 통합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국민의힘 소속 김영환 충북지사가 2009년 민주당 소속으로 재보궐선거에 출마했던 당시 포스터. 매일신문 DB

이 개정안은 당시 민주당 소속이었던 국회 지식경제위원회(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이 제18대 국회 여러 의원의 마트 규제법을 한 데 묶은 법안이었다. 당시 지경위원장은 현재 국민의힘 소속인 김영환 충북지사였다.

제18대 국회에서 이 법이 통과하는데 포석을 깐 건 다름 아닌 민주당 전신 통합민주당 소속 이시종 전 충북지사였다. 제18대 국회 때 발의된 마트 규제법 가운데 최초로 영업시간 제한을 담은 법안이 바로 그의 2008년 6월 대표발의안이었다. 그는 충북지사가 되기 전 국회의원이었다.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민원실 앞에서 김민석 국무총리 관권선거 개입 고발장을 제출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는 서범수·조은희·박정훈·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연합뉴스
이시종 전 통합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이 법이 통과하자 맞벌이 부부의 마트 방문 가능 시간은 턱 없이 부족해졌다. 마트 규제법 도입 직전 업계 1위였던 이마트 점포 139곳 가운데 10곳이 24시간 영업을 했다. 업계 2위였던 홈플러스는 매장 125곳 가운데 70곳이 24시간 마트였다.

규제 시행 이후 오후 12시면 마트는 문을 닫았고 주말에도 마트 문은 닫히기 시작했다.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 제한을 걸어놨기에 새벽배송은 불가능했다.

쿠팡에겐 '로켓배송'을 도입할 적기였다. 2014년 쿠팡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로켓배송을 출시했다.

◇문재인 정부 영업시간 규제 직후 쿠팡의 폭발 성장

쿠팡의 성장세는 가파랐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전년도 대비 80%를 넘는 초대박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2019년 13조원이었던 매출이 2020년에만 22조원이 된 것이었다. 이런 성장률은 로켓배송이 활성화 된 2016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문 정부의 규제 덕이었다. 문 정부는 코로나19 때 오후 9시 영업 제한을 걸었고 그나마 자정까지 열려있던 마트 문은 자연스레 오후 9시에 닫혔다.

영업시간이 축소되면 사람이 더 붐빌 수밖에 없는데 그런 과학적 사고는 문 정부에겐 사치였다. 윤주경 당시 국민의힘 의원이 정부에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자 시간대별 데이터'를 요구하자 정부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영업 제한 시간을 정할 때 시간대 별로 언제 감염이 많이 일어나는지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결정을 했다는 얘기였다.

사람들은 대형 마트에 등을 돌리고 쿠팡으로 향했다. 코로나19가 끝물이던 2023년 쿠팡은 10년 만에 처음 이익을 봤다. 2014년 로켓배송 출시 때 3천억원대 매출에 1천100억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한 쿠팡은 2023년 매출 31조원에 영업이익 6천억원을 넘겨 적자행진을 끝냈다.

◇국민의힘은 둘로 나뉘어 우왕좌왕

쿠팡을 견제할 수 있는 유통 구조를 재편하려면 국내 마트 업계가 놓인 '규제 늪'을 제거해야 한다. 노동계조차 규제 철폐를 외치고 있다. 조합원 7천명으로 마트업계 최대 노조인 이마트노조는 22일 "쿠팡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소비자에게 쿠팡 외 대안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며 "사양산업이자 한계산업을 13년간 규제로만 일관하면서 그 기간 동안 1만명의 마트 노동자가 사라졌다. 대형마트 규제가 소비자 입장을 충분히 반영했는지, 누가 혜택을 받았는지, 도입 취지에 맞는 효과가 있었는지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제22대 국회에선 많은 국민의힘 의원이 규제 폐지 법안을 내놨다. 하지만 반대로 가는 법안도 내놔 노선 자체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강승규 의원은 의무휴업일 지정 시 공휴일로 정하도록 한 원칙을 없애고 영업제한 시간에도 온라인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대형 마트도 새벽배송을 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최수진 의원과 이종배 의원은 영업시간 제한이나 의무휴업일은 지키되 통신판매업을 신고한 대형마트의 경우 오프라인에선 온라인에선 24시간 배송 등 종합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대표로 내놨다.

하지만 이에 반해 반대로 움직이는 국민의힘 의원도 있다. 김성원 의원은 지난해 말 농협 하나로마트와 같은 식자재 마트도 이마트와 롯데마트와 같은 대형마트처럼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민원실 앞에서 김민석 국무총리 관권선거 개입 고발장을 제출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는 서범수·조은희·박정훈·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연합뉴스

이 뿐만 아니다.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마트 규제 관련 법 발의에 참여한 바 없이 쿠팡 악마화에 나섰다. 그는 26일 페이스북에 "이마트나 G마켓, 롯데마트 등 국내 토종기업을 대안으로 키워야 쿠팡의 횡포에 맞설 힘이 생긴다"면서도 "쿠팡은 파렴치한 기업이다. 3천370만 국민 정보가 유출된 뒤엔 제대로 된 사과도 없었고 큰 돈을 우리 시장에서 벌어가는 김범석 의장은 일언반구도 없다. 매출 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고 영업정지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공동 발의는커녕 기업 분석도 제대로 하지 않고 악마화만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박 의원이 쿠팡을 가리켜 "한국 시장에서 큰 돈을 벌어간다"고 했지만 사실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2014년 출시된 로켓배송 11년 역사를 정리해 보면 지난해까지 쿠팡 역대 실적은 총 5조원 '마이너스'다. 2014년부터 2022년까지 9년 간 도합 6조2천억원 손실을 기록했다가 최근 2년 간 1조2천억원 이익을 낸 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