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의 연극리뷰 ]아들과 자전거 수리점 주인장이 된 장주네 전문가 '오세곤 선생'. 다섯 권의 희곡집과 한 권의 평론집'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쓰다'

입력 2025-12-26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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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쓰다. 도서출판 연극과 인간 제공.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쓰다. 도서출판 연극과 인간 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5권의 희곡집과 1권의 평론집을 출간한 그의 이름 앞에는 다양한 수식어들이 붙는다. '장 주네'와 '이오네스코' 하면 오세곤을 떠올렸고, 그가 번역한 20여 편의 책들은 번역 희곡이 귀하던 시절 공연 대본으로 대학 연극반과 전공 학생들의 필독서였다. 한국연극에서 빠질 수 없는 그는 문화예술진흥법,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예술인복지법 등 세 가지 법 개정이나 제정에 깊이 관여했다. 연극교육운동을 하면서는 연극인 강사 인력풀 제도 도입을 주도하고, 연극 교과목 개설 운동을 펼쳤다. 초·중·고등학교에 연극 과목과 교재가 전무했던 시절부터 교육부가 연극 과목을 정규 교육과정에 도입하고 교재를 개발하는 데 이르기까지 선두에 있었고, 관련 일들은 그의 연구와 손을 거쳤다. 1976년 태평로 세실극장에서 <하녀들>을 대학 3학년 때 연출한 오세곤은 '작품의 이해가 부족해 허점이 많은 공연이었다' 라며 인터뷰를 통해 고백한 바 있다. 대학교 때 인연이 된 '장 주네'로 박사학위를 받고 반세기를 장 주네 연구로 살아왔으니, 오세곤 선생도 장 주네가 된 셈이다.

그는 2011년도 대학로에 '노을소극장'을 개관하고 10년 만에 폐관(閉館)하게 되면서 마지막으로 공연한 작품도 장 주네의 「하녀들」이었다. 그의 연극 인생 중 장 주네와 「하녀들」은 지만지드라마(2020)에서 장 주네 연출법을 추가해 희곡을 재번역·출간할 정도로, 그의 탐구정신이 녹아 있는 번역희곡은 '오세곤'으로 읽혀지고 있다. 그런 그가 극단을 창단하고 본격적으로 연출을 한 지 20년이 되었다며, 그동안 번역·번안·윤색·재구성·재창작하거나 직접 창작한 두 권의 희곡집과 한 권의 연극평론집을 포함한 오세곤의 전집 같은 다섯 권의 책을 『연극과인간』에서 출간한 것은, 올해 만으로 70세가 된 오세곤 선생의 50년 연극 인생사를 담아낸 것 같다. 다 섯권 희곡집은 한 권, 두 편씩 묶어 총 10 편의 희곡이 수록되었다. 연극평론집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쓰다』는 1992년 장 주네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그해 KBS 라디오 <문화살롱>에 매주 출연해 주례 연극비평을 하면서 시작된 평론 인생을 묶은 책이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쓰다. 도서출판 연극과 인간 제공.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쓰다. 도서출판 연극과 인간 제공.

◇ 평론집"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쓰다"로 쓴 '가라'같은 세상의 부조리 「가라가라」, 「가라자승」까지.

목차도 월간 한국연극 1993년 3월호에 발표된 극단 산울림의 <죄와 벌>부터, 오늘의 서울연극(TTIS) 제159호(2024년 2월호) '관객이 인생 작품이 될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까지 104편의 연극평론이'Ⅰ. 공연평' 섹션으로 수록되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게재된 플랫폼이 광범위하다는 점이고, 평론을 위한 장르와 극단, 연출의 취사선택이 넓다는 것이다. 샘터, 객석, 예술지, 다양한 언론사까지 그가 써온 연극평론 폭이 넓다는 것은, 그만큼 1990년대 오세곤의 글쓰기가 대중적이었다는 것과 같다. 1995년 극단 완자무늬의 <콘트라베이스>에서는 그는 '원작의 감동을 살린 연기, 연출이 돋보인 앙상블'이라는 제목을 부각하면서, 신문 지면을 보는 것 같은 헤드라인을 감각적으로 살린 점이 눈길을 끌었다. 평론 문장 중에서는 "1인극이라 해도 대화체의 자연스러운 언어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그러한 측면에서 이번 공연은 연기자가 시종 대화의 형태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등 상당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하면서도, 이어서는 연극교육운동을 하며 불편한 것은 바로잡고 한마디는 꼭 해야 하는 오세곤 선생의 까칠한 성격이 드러나는 문장으로 이어진다.

"연극에서 자연스럽다 함은 어디까지나 연기자가 극중 배역으로 변신해 구사하는 말과 몸짓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규범 안에 있다는 뜻이지, 결코 연기자의 평소 개인적이고 특별한 습관까지 그대로 무대 위에 올린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문제점을 지적한다. 당시 연출과 배우가 연세대학교 극회 활동 인연이 큰데도, 평론 글은 친분과 인연이 예외 없을 정도로 무대를 진단하고 있다는 것은, '할 말을 하는 오세곤 선생의 이미지'가 떠오를 정도다. 연극평론가는 평론의 목적을 가지고 쓸 경우 글쓰기와 분석에 유리한 작품들만 선택해 관극하는 경우도 있고, 폭넓게 연극을 감상한 뒤 한 편을 쓰는 경우도 있다. 오세곤 선생의 연극평론을 보면 후자에 해당된다. Ⅱ의 주제에는 31개의 주제적 논평이 실렸다. 논평에는 연극교육의 표준화를 위해 달려온 선생의 인생길이 담겨 있고, 우리나라 기초예술과 예술인 복지, 제작극장 활성화, 연극인 표준 인건비, 국립극단 개혁, 문예진흥법, 연극교육의 미래 등 연극예술을 정책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진단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중 『박제된 교육의 숨통, 연극교과의 오늘과 내일』(〈문화예술〉, 2003년 3월)은 주제 논평으로, 2000년 12월 한국연극학과 교수협의회에서 연극 교과목 개설 추진위원회가 발족되던 시점부터, 그해 고등학교 2학년생들에게 최초로 제7차 교육과정이 적용되던 해까지 연극교과가 정규 과목으로 채택되어야 하는 연극교육의 현실을 체계적으로 지적한 글이다.

오세곤 선생은 문화예술진흥법,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예술인복지법 등 세 가지 법의 개정에 깊이 관여했다. 연극교육 운동을 하면서는 연극인 강사 인력풀제 도입을 주도하고, 연극 교과목 개설 운동을 한 것은 잘 알려진 그의 투혼적인 정책 완결편이었다. 초·중·고 학교에 연극 과목과 교재가 전무했던 시절부터 교육부가 연극 과목을 정규 교육과정에 도입하고 교재를 개발하는 데 이르기까지, 그는 항상 선두에 있었고 관련된 일들은 그의 손을 거쳤다. 2002년도에 고등학교 교과서, 2003년도에 고등학교 교사용 지도서와 중학교 교과서, 2004년도에 초등학교 교과서와 중학교 교사용 지도서를 발간했다. 2008년에는 초등학교 지도서가 마무리되면서 초·중·고 전체 교과서와 지도서를 개발했다. 그의 연극 인생 절반은 연극교육과 교과서 보급을 위해 살아온 셈이다.

Ⅲ은 칼럼, 편집인의 글, 월간 오늘의 서울연극 편집인의 글 등 중 시론과 권두언으로 쓴 70여 편의 글을 모았는데, 한국연극 토양의 발전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세상을 향해 내놓은 글들로, 오세곤의 생생한 말로 들린다. '연극평론의 부활을 꿈꾸며'(공연과 이론, 2014년 가을)은 연극 토양과 생태계, 창작 환경의 발전적 토양으로 견인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평론 환경임을 분명히 하면서도, 인터넷 매체, 언론, 관련 예술 대중지 등에 평론 글들이 대중적으로 희석되는 현상을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치열하게 연극평론을 쓰고자 하는 선생의 집념이 여전히 발열되고 있는 글이다. 이렇게 모여진 오세곤의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쓰다』는 770쪽 분량이다. 한 시대를 조망하는 연극계의 현상들을 평론과 칼럼, 논평을 통해 읽다 보면 시대의 흐름과 연극계의 현상이 보이고, 지금 우리가 한국연극을 위해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진다. 이 책은 평론가들의 입문서와 같고, 연극인들과 연극학도들에게는 한국연극의 부분적 역사가 되는 책이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쓰다. 도서출판 연극과 인간 제공.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쓰다. 도서출판 연극과 인간 제공.

◇ 오세곤의 희곡 '희극과 소극, '슬픈 희극, 유쾌한 수다'

희곡집은 셰익스피어, 체호프, 몰리에르, 뷔히너, 고리키, 브레히트, 라신의 고전 명작들이다. 두 작품씩 묶어 책에 제목을 달았는데, 책 표지의 색감이 강렬하다. 1권은 '희극과 소극'(브레히트 원작 <술로먼의 재판>, 몰리에르 원작 <뻥짜 귀족>)이다. 2권은 '슬픈 희극, 유쾌한 수다'라는 표제로 체호프 원작 <갈매기>, <체홉의 수다: 곰, 청혼, 기념일>이 실려 있다. 3권은 '을과 을의 몸부림'(뷔히너 원작 <보이첵>, 고리키 원작 <밑바닥에서>)이 담겨있다. 4권 '복수혈전'은 (라신 원작 <안드로마케>, 셰익스피어 원작 <타이터스>)으로 5권은 오세곤의 창작희곡으로 「가라천국」(<ㄱㅏㄹㅏㄱㅏㄹㅏ>, <가라자승>)이 수록되었다. 희곡 10편을 2작품씩 묶어 희곡집 5권과 평론집까지 6권이다. 공연 대본으로 활용될 정도로 무대에서 살아온 오세곤의 번역 문장들이 살아 있는 작품들이다. 윤색·재구성한 희곡들은 창작희곡 만큼 연출적으로 무대에서 활용도가 높은 텍스트들이다.그의 창작희곡 『가라천국』에 수록되어 있는 <ㄱㅏㄹㅏㄱㅏㄹㅏ>는 가가와 라라, 두 남녀가 등장하는 희곡이다. '가라'는 원래 '가라오케'의 '가라'이다. 한국인인 선호하는 '빨리빨리' 다음으로, '가라'로 처리하는 사회구조의 행태를 비판하는 작품이다. 1장은 사망한 최고 권력자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죽음을 비밀로 한 채 체제를 유지하고자 죽은 자를 종교적 우상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2장은 거짓을 덮기 위한 거짓의 모순이 끝없이 심화되는 과정을 그렸고, 3장은 허구와 허구가 중첩되어 모든 것이 불확실해지는 '가라'의 세상을 넘은 4장에 이르면, 허구와 거짓, 모순으로 형상된 '가라 세상'의 부조리한 모습을 형상화한다. 이 희곡은 2016년 6월 제7회 현대극페스티벌 참가작으로, 극단 노을이 노을소극장에서 오세곤 연출로 공연한 초연 대본이다. <가라자승>에는 가라, 라자, 자승, 승가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옴니버스 희곡이다. 이 희곡은 <ㄱㅏㄹㅏㄱㅏㄹㅏ>를 재공연할 당시 AI를 주요 내용으로 한 5장이 추가되었는데, 작품과 결이 맞지 않는다고 작가가 판단해 5장 옴니버스 구성을 토대로 발전시킨 공연 대본이 바로 <가라자승>이다. 창작 희곡 두 편이 '가라 시리즈'로 연결되는 셈이다. 반세기 연극 인생 동안 부조리극을 연구해온 오세곤 선생답게 희곡은, 부조리하면서도 유쾌하게 읽힌다. 초고도화된 AI 세계에서 진실과 실체가 없는 '가라'의 연속들이 비극이 되는 현상을 유쾌하게 비틀고 있는 희곡으로, 네 명의 가라·라자·자승·승가가 등장한다.

요즘 아들과 함께 충남 아산에서 자전거 수리점을 열고 자전거 전문가가 된 오세곤 선생은 교수, 번역가, 평론가, 연극행정가, 연극운동가로 살아온 인생 중 "번역과 장 주네는 곧 내 삶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오세곤이란 연극인을 한국 연극계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기록하고 바라봤으면 좋겠습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연극 정책이나 교육 관련해서 제가 초석을 놓았다는 사실은 기억됐으면 좋겠어요.문화예술교육지원법, 문화예술진흥법, 예술인복지법 등 여러 문제가 있긴 해도, 그것을 고치거나 처음 만드는 데 열정적으로 참여한 오세곤이 있었다. 성과는 미미하지만 평론이 제 역할을 하도록 노력했던 오세곤이 있었다.유명한 작품이 어렵고 재미없을 리 없다는 신념으로 번역에 도전하고 희곡을 잘 형상화하려고 노력한 오세곤이 있었다. 이 정도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오세곤 선생은 다섯 권의 책, 10 편의 희곡과 한 권의 평론집으로 스스로를 기억시켰으니 약속을 지킨 셈이다. 그의 나이 일흔, 자전거 수리점 주인장이 된 뒤에도 말이다. 그를 거쳐 간 직업은 교수, 평론가, 연극정책가, 번역가, 희곡작가, 편집주간, 연출가, 그리고 자전거 전문가까지 10여 개가 된다. 오세곤 선생이 살아온 명함이다. 인생이고 연극철학이며, 그 정신이 이번에 출간된 희곡집과 평론집에 담겨 있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쓰다. 도서출판 연극과 인간 제공.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쓰다. 도서출판 연극과 인간 제공.

▲오세곤 선생은.

충남 아산시에서 아들과 '자전거와 함께'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아들 때문에 시작한 자전거가 전문가가 됐다. 아산에 거주하면서도 노을극장이 폐관된 이후에도 장주네의 <하녀들>, 베케트 작< 오행복한 날들>등 부조리 연극을 지속적으로 무대화 하고 있다. 장주네의 인연은 1974년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해 현대희곡 전공자로 '장주네의 희곡연구' 박사를 학위를 받은뒤에서 반세기를 장주네로 살아왔다. 『배우의 화술』, 『예술강국, 문화대국』,『연기화술클리닉』등 저서를 집필했고, 연극 분야 고등학교 교육과정(2009,2015,2022) 개발과 여러 종의 고등학교 연극 교과서를 집필을 주도했다. 5권의 희곡집(10편)의 평론집은 고희의 올해 고희의 나이에 출간된 책이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