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황희진] 지방소멸시대의 천도(遷都)

입력 2025-12-25 00:00:00 수정 2025-12-25 00:3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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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8일 청와대 복귀를 위한 이사가 진행되고 있는 청와대 춘추관에 청와대 문양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 12월 18일 청와대 복귀를 위한 이사가 진행되고 있는 청와대 춘추관에 청와대 문양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황희진 국제부 디지털팀 팀장
황희진 국제부 디지털팀 팀장

나라의 수도(首都)를 옮기는 천도는 타의로 유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외침을 당해 수도를 빼앗기거나 그럴 가능성이 높을 때 이뤄졌다.

우리나라는 백제가 고구려의 침략으로 한강 유역 위례성이 함락하자 남쪽 웅진성으로 옮긴 사례, 고려가 몽골이 쳐들어오자 개경을 떠나 강화도로 이전했다가 몽골과 화친을 맺고 개경으로 환도한 사례, 그리고 6.25 전쟁(戰爭) 때 북한의 침공으로 서울을 빼앗기자 대전·대구·부산을 차례로 임시수도로 삼은 사례가 있다.

전쟁이 천도할 확률을 높인다고 할 수 있는데, 국가 내부의 전쟁 같은 상황인 정쟁(政爭)이 극에 달해도 곧잘 천도로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궁예의 신하였던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며 궁예가 세운 태봉의 수도 철원에서 송악(개경)으로 천도한 사례, 역시 고려 신하인 이성계가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세운 후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한 사례가 잘 알려져 있다.

천도의 또다른 요인인 정쟁이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비교적 점잖은 제도로 굳어진 게 새 정부를 세우는 대통령 선거 아닐까. 윤석열 정부가 종로 소재 청와대에서 용산 소재 대통령실로 대통령 집무실 및 관저를 옮긴 건 작은 천도, 이재명 정부가 다시 청와대로 복귀하는 수순은 소(小)환도라고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역사 속 사례들만 살펴봐도 전쟁 또는 그에 준하는 혼란을 억제할 줄 아는 발전되고 안정된 국가에서는 웬만해선 수도를 옮길 이유가 없다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선거철이면 민심 몰이 의도가 다분한 수도 이전 공약을 지겹게 봐 온 터라 현재 서울 강북 6km 거리 두 지점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통령 집무실 천도·환도, 아니 '이사' 해프닝과 그걸 다루는 정치적 언사들의 속내가 훤히 보인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대권 주자들이 언급했던 천도는 무더기로 낙제점(落第點) 사례다. 김대중 대통령의 1971년 대선 때 대전 행정부수도 공약, 김영삼 대통령의 1992년 대선 때 제2행정수도 공약, 노무현 대통령의 2002년 대선 때 수도 이전 공약 모두 선거 전략에 불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 때 1호 공약으로 내세운 광화문 집무실 공약은 대통령 당선 후 2년 뒤 파기해 흑역사가 됐다. 이어 비슷한 걸 강행한 셈인 윤석열 대통령의 용산행도 500억원대 혈세 낭비 사례로 분류되는 수순이다.

더는 실망스러운 천도 얘기는 듣고 싶지 않은 게 국민들의 심정이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천도란 수도를 지방 어디로 옮기는 차원이 아니라 국토 곳곳 여러 점과 선과 면을 다루는 얘기가 됐다. 소멸 위기를 맞은 지방에 천(千) 개의 길(道)을 내는 서사다.

마침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이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제시한 '5극3특' 전략, 즉 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 등 5개 초광역권별 특별지방자치단체를 구성하고 제주·강원·전북 등 3개 특별자치도의 자치 권한 및 경쟁력을 강화하는 특별법 제정 추진은 역대 대통령들의 말 또는 시도만 남긴 전례를 넘어 실현으로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 만일 계획만 거창하고 그 내실(대구경북의 경우 신공항 추진과 인재 양성, 특화 산업 인프라 조성 등)을 다지는 지원이 부족하다면, 역시나 그때 그 어느 대통령의 말만 무성하던 사례가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