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수상한 감정원 영화감독

입력 2025-12-24 11: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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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별과 모래' 연출…"금호강 팔현습지 공사, 영화 통해 더욱 알려지길"

감정원 감독이 금호강 팔현습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김도훈 기자
감정원 감독이 금호강 팔현습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김도훈 기자

지난 5일 폐막한 제51회 서울독립영화제는 대상작으로 감정원(35) 감독의 장편영화 '별과 모래'를 선정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반세기 역사를 지닌 한국 독립영화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판타스틱영화제와 함께 국내 4대 영화제로 꼽힌다.

심사위원단은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찍을 수 없는 종류의 영화가 아닌가 생각했다.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던 작품"이라며 "지역 환경 이야기를 극영화로 풀어낸 작품이라 더 의미가 깊다"고 이 영화를 평가했다.

영화의 배경은 대구 금호강 팔현습지(수성구 고모동)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이 800여m 규모의 보도교와 1.5㎞의 산책로를 설치하는 '금호강 고모지구 하천환경정비사업'을 두고 3년째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환경단체 등에 따르면 이곳엔 수리부엉이 등 20여종의 법정보호종이 서식한다. 이곳 대부분이 야생동물보호구역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감정원 감독은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영화감독이다. 앞서 2021년엔 대구 염색공단 여성 노동자의 죽음을 다룬 첫 장편 영화 '희수'로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고 전북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감 감독은 2023년부터 팔현습지 보도교 건립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들의 모임인 '팔현습지를 지키는 예술행동'의 일원으로 활동해왔다. 그는 지난 3년간 팔현습지를 보존하기 위해 생태환경운동을 펼친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이 영화에 녹였다.

지난 22일 '별과 모래'의 배경이 된 팔현습지에서 감정원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감정원 감독이 금호강 팔현습지 인근 한 카페에서 자신이 연출한 영화
감정원 감독이 금호강 팔현습지 인근 한 카페에서 자신이 연출한 영화 '별과 모래'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도훈 기자

-'별과 모래'는 어떤 영화인가.

▶러닝타임이 110분 정도 되는 장편 극영화다. 영화엔 각기 다른 꿈을 꾸는 두 청년이 등장한다. 도시의 속도에서 비켜난 인물로 어두워진 강가에서 습지를 그리는 '세연'과 금호강 모래를 팔아 큰돈을 벌려는 '재우'의 이야기가 팔현습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지난 3년간 해왔던 생태환경운동을 바탕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작업을 했지만, 개발을 반대한다거나 공사를 철회해야 한다는 식의, 너무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진 않았다. 개발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과도 선을 긋고 싶지 않았다.

다만,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각기 다른 입장을 느껴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더 좋은 걸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마음에서 조금은 부드러운 방식으로 자연과 인간, 꿈과 삶, 삶의 속도 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던 것 같다.

-'별과 모래'의 모든 촬영은 대구에서 이뤄졌다. 배우와 스태프도 모두 대구 사람들로 구성됐다. '대구 영화'라는 부분을 염두에 두나.

▶'대구 영화'란 건 외부에서 지칭하는 것일 뿐이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진 않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대구이기에 대구에서 영화를 찍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제가 놓인 공간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고, 동료들이 대구에 있기에 이곳에서 작업을 한 거다.

다만 이번 작업이 제게도 독특했던 건, 함께한 이들이 온전히 다 영화인이 아니었고 비영화인인 '팔현습지를 지키는 예술행동' 팀원들이 함께 했다는 점이다. 팀원들은 국악연주자, 시각예술가, 연극연출가, 사진가 등으로 다양하다. 이들이 영화 작업을 해본 적은 없지만 영화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배우로 출연한 이도 있었고 그밖에 미술 감독, 동시 녹음, 현장 스틸 사진 촬영 등으로 참여했다. 그래서 이번 영화가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감정원 감독이 금호강 팔현습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팔현습지를 지키는 예술행동'이 금호강 팔현습지 한편에 설치한 작업물 앞에서 감정원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원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나.

▶그건 아니다. 다만 첫 장편영화 '희수'를 비롯해 지금껏 만든 영화를 돌아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번 영화는 2023년 대구 금호강 영상 기록을 요청받은 데서 출발했다. 당시는 '희수' 극장 개봉 이후 과부하가 찾아왔고, 맡고 있던 대구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을 그만뒀을 때였다. 20대 초반부터 영화 현장에만 있다 보니 일상적인 제 삶이 거의 없었고 영화 세계 이외에 뭔가를 느끼면서 살아보지 못했던 것 같다. 환경 이슈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 큰 고민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금호강을 기록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이곳에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느 순간 금호강 팔현습지 공사가 곧 시작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비를 들여서라도 올해는 꼭 영화를 만들어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 달여 만에 시나리오를 탈고했고 지난 6월부터 촬영에 들어갔다. 팔현습지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게 된 거다.

그러고 보니 차기작으로 구상 중인 영화도 환경과 관련된 이야기다. 다음 영화는 가까운 미래의 대구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로, 기후위기 등 환경 문제를 마주한 현실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내년 초쯤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대구는 지역 영화계에서 꾸준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게 지역 안팎의 평가다. 지역 영화인으로서 보는 대구 영화 제작 여건은 어떤가.

▶한마디로 척박하다. 지난 정부 때 지역 영화계의 마중물 역할을 해온 지역영화 활성화 사업예산이 삭감된 이후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다. 예산 문제로 중단될 위기에 처한 대구영화학교도 근근이 버티는 상황이다.

대구시의 제작비 지원은 '대구 다양성영화 제작 지원 사업'이 유일한데 장편 1편에 7천만원을 지원하고 단편 3편에 각 1천만원씩을 지원한다. 그밖에 대구문화예술진흥원에서 단편 2편을 선정해 각 400만원씩 지원하는 게 전부다.

감정원 감독이 늘 지니고 다니는 카메라를 꺼내 사라질지 모를 금호강 팔현습지 풍경을 담고 있다. 김도훈 기자
감정원 감독이 금호강 팔현습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그럼 상업영화처럼 투자자가 없는 독립영화는 어떤 식으로 제작비를 마련하나.

▶사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제작지원 기회는 너무나 적다. 대다수가 독립영화 1편 찍고 나면 빚더미에 앉게 된다. 그 빚을 갚으려고 공장에서 몇 달간 일하는 동료도 여럿 봤다. 이처럼 지역에서 활동하는 많은 영화인들이 제작비를 마련하거나 생계를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한다.

'별과 모래'의 경우 총 2천만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사안이 급하다는 생각이 들어 사비를 들여서라도 진행하려 했었는데, 다행히 촬영에 들어가기 전 서울독립영화제의 '이강길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돼 1천만원의 제작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팔현습지를 지키는 예술행동' 팀원들에게 함께하자고 도움을 요청한 것도 제작비 문제 때문이었다.

1천만원을 지원받은 건 감사한 일이지만 나머지 제작비 1천만원을 갚아야할 상황이었다. 사실, 지난달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영화를 완성한 뒤 줄곧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수상으로 상금을 받게 되면서, 다행히 제작비로 인한 빚을 해결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영화가 수상을 하게 돼 팔현습지 이야기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됐다. 참 감사한 일이다.

-지역의 영화제작 여건에 대해 바라는 점이 있을 것 같다.

▶관계 기관에서 콘텐츠라는 결과물 외에도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좀 집중해줬으면 한다. 그들에게 어떤 자원을 제공하고 접근을 해야 이 생태계가 건강해질 것인가 하는 고민 말이다. 예를 들자면 영화인들의 복지도 있을 테고, 제작지원이나 배급의 측면도 있을 것이다. 뭐 하나만 콕 집어서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현장 인력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서 조금씩 나은 방향을 찾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감정원 감독이 늘 지니고 다니는 카메라를 꺼내 사라질지 모를 금호강 팔현습지 풍경을 담고 있다. 김도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