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오정일] 냉장고는 세상을 바꿨지만 AI는 아직이다

입력 2025-12-31 10: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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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일 경북대 교수회 의장

오정일 경북대 교수회 의장
오정일 경북대 교수회 의장

AI는 단어들을 이어 붙일 뿐, 그 뒤에 있는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게리 마커스, 뉴욕대 명예교수) 혁신적인 기술의 경제적 영향은 기대보다 느리고 제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폴 크루그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현재의 AI 붐은 2000년대 닷컴 버블과 비슷하다.(마이클 베리, 사이언 캐피털 창립자)

정반대의 평가도 있다. AI는 컴퓨팅을 근본부터 다시 만들고 있다. 모든 산업은 AI에 의해 변화될 것이다.(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AI는 거의 모든 경제 부문에서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릴 것이다.(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 AI는 사람들이 일하고, 배우고, 이동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바꿀 것이다.(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립자) 독자들은 어느 쪽인가?

세상을 바꾼 기술로 먼저 떠오르는 것은 증기기관이다. 와트의 증기기관 하나가 수십 마력을 공급했다. 공장은 강과 풍차에서 벗어나 도시로 이동했다. 영국의 1인당 실질국내총생산은 1700년 1,500달러에서 1870년 3,200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기차는 단숨에 화물 운송비를 10분의 1로 낮췄다. 운송비 하락으로 전국 단위 시장이 만들어졌다. 정시 출퇴근과 빠른 신문 유통은 일상(日常)을 바꿨다.

기차가 공간을 재편했다면, 전신은 시간이라는 벽을 허물었다. 몇 주 걸리던 유럽 소식이 불과 몇 분 만에 미국에 전해졌다. 지역 간 정보 격차가 사라지면서 거래비용이 크게 줄었다. 전화가 이 변화를 가정과 기업으로 전파했다. 그 결과 마케팅 방식이 문서와 방문에서 음성과 통신으로 전환됐다.

1870년대 미국에 냉장 화차가 도입됐다. 고기를 장기간 보관하며 운송할 수 있게 됐다. 미국, 호주, 아르헨티나 산 고기가 유입되면서 런던의 고기 가격이 30%p 이상 하락했다. 가구소득 대비 식료품 지출 비중은 30% 밑으로 떨어졌다. 가정용 냉장고가 보급되자 주 1회 장보기, 대량 구매, 음식 장기 보관이 보편화됐다.

마지막은 컴퓨터다. 컴퓨터가 널리 쓰이기 전에는 회계, 통계, 재고 관리에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메인프레임과 개인용 컴퓨터 보급으로 문서 작성과 데이터 저장 비용은 사실상 0이 됐다. 미국의 비농업 부문 연간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1973~1995년 1.4%에서 1995~2005년 2.8%로 두 배로 높아졌다.

생산성을 큰 폭으로 끌어올리지 못한 기술은 혁명이라 부르기 어렵다. 물론 생산성이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 세상을 바꾼 기술은 대체로 모든 산업에 적용되는 '범용 기술'이었다. 이러한 기술은 연쇄적인 혁신을 낳고, 기업 구조와 노동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또 하나의 기준은 비가역성이다. 특정 기술이 없었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면, 그 기술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된 것이다.

AI 기업들은 무료 구독으로 사용자를 끌어모은다. 데이터를 먼저 확보하기 위해서다. 인터넷 사용자가 9억 명인 인도에서 OpenAI는 1년간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예상대로 AI 이미지·영상 제작 기술이 성인 콘텐츠 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결과 'AI 포르노'가 등장했다. 포르노는 상업화가 쉽고 수요도 확실하다. 그러나 부가가치는 낮고, 생산성 향상과 거리가 멀다.

휴머노이드 로봇에 AI를 탑재한 '피지칼 AI'도 갈 길이 멀다. 피지칼 AI는 '마징가 제트'를 만든다는 발상이다. 문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AI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수요다. 휴머노이드 로봇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은 많지 않다. 공장에서는 이미 산업용 로봇이 제 몫을 하고 있다. 사무실과 가정에는 AI와 사물인터넷이 보급됐다. 자율주행 자동차조차 완성하지 못한 현실에서, 피지칼 AI 상용화를 말하는 것은 공상에 가깝다.

AI는 과대 평가됐다. 이 기술은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대신 막대한 전기와 물을 소비한다. 새로운 기술로 인식되지만 그 아이디어는 1950년대에 나왔다. 당시에는 데이터와 계산 능력이 부족해 실용화되지 못했다. 오늘날의 AI는 계산 능력 발전의 결과물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미 있던 것이 다시 있고, 이미 행한 것을 다시 행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