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관문·월배시장에 가면 모둠회, 납작만두, 막창 꼭 먹어요"…고물가 속에서도 시장에서 배운 건 '절약'과 '이웃'
지난달 8일, 대구 달서구 성당동의 한 마트에서 과일값을 흥정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태국·베트남·파라과이에서 온 며느리들은 귤과 사과 등을 고르며 마트 직원에게 '이건 할인하나요', '덤 있나요'를 묻고 있었다.
빠뜨리시아(33·파라과이), 윌자이포른(36·태국), 사티흐엉(37·베트남) 씨는 국적은 다르지만 모두 대구에서 가족 밥상을 책임지는 며느리들이다. 달서구가족센터에서 처음 만났지만 이제는 서로를 '언니·동생'으로 부르는 사이다.
대구 시집살이 경력도 각각 7년, 10년, 17년으로 만만치 않다. 처음엔 이방인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시장 상인들 얼굴을 먼저 기억하는 '생활 고수'가 됐다.
◆시장 말투가 싸우는 줄…사투리 충격에서 시작
세 며느리들의 시장 적응기는 모두 '언어 충격'으로 시작됐다. 서문시장을 즐겨찾는 태국댁 윌자이포른 씨는 "태국 사람들은 말투가 부드럽고 조용해요. 시장에서 어른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걸 보고 '싸우나?' 싶었어요"라며 처음 대구에 도착했을 때를 잊지 못한다.
관문시장을 좋아하는 베트남댁 사티흐엉 씨도 "칠곡에서 직장 다닐 때 사장님이 '가시기(가위) 가져온나' 라는 말을 이해 못했죠. 시장에서도 말이 너무 빠르고 억양이 강해 알아듣기 힘들었죠. 지금은 남편보다 사투리를 더 잘해요"라며 웃었다.
월배시장에서 자주 장을 보는 파라과이댁 빠뜨리시아 씨는 "파라과이에선 천천히 고르고 대화도 하면서 계산해요. 대구 시장은 빠르고 정확해요. 긴장되는 느낌이 있지만, 지금은 그 긴장감이 또 재미있어요"라며 한국 시장 특유의 '속도'에 적응하느라 진땀을 흘렸다고 했다.
◆입맛으로 배운 대구
시장에 갈 때마다 이들이 가장 설레는 건 '대구 음식'이다. 윌자이포른 씨는 "모둠회 마니아로 바다 음식을 원래 좋아하는데 광어·참돔·우럭이 반짝이는 접시를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져요"라며 흐뭇해했다.
대구 생활 17년째인 사티흐엉 씨는 '막창 전도사'다. 그녀는 "처음에 냄새 때문에 못 먹겠다 했는데, 한입 먹고 깜짝 놀랐어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고, 고소한 기름이 터지는 맛에 반했죠"라며 자랑했다. 빠뜨리시아 씨는 서문시장의 '납작만두'를 첫손에 꼽았다. "파라과이엔 이런 식감이 없어요. 철판에 지글지글 굽는 소리와 고추 간장 조합이 잊히지 않아요"라며 군침을 흘렸다.
◆"장보기가 겁나요"…고물가가 바꾼 장바구니
체감물가를 묻는 말에 세 며느리는 '장보기가 겁난다'는 말부터 꺼냈다. 이들은 '고물가·고환율·고금리'에 계란, 상추, 오이, 식용유, 고등어, 오징어 등 뭐 하나 싼 게 없다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윌자이포른 씨는 "쌀 20kg 한 포대가 7만원 가까이 된다"며 영수증을 꺼냈다. 그녀는 "작년보다 확실히 체감돼요. 장보는 시간이 길어졌어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사티흐엉 씨는 "고기, 두부, 콩나물, 우유 등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할인 상품을 골라 담아요. 대구 살면서 가장 많이 배운 게 '절약'이에요"라고 했다. 또 그녀는 "베트남은 거의 현찰과 일시불이에요. 베트남엔 없는 카드 '할부 결제' 에 놀라웠어요"라고 감탄했다. 빠뜨리시아 씨는 "고기를 300g, 500g씩 필요한 만큼만 살 수 있어요. 파라과이는 대부분 1kg 단위라 부담돼요. 한국 시장은 경제적이에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박스 기사
◆ 그녀들의 장바구니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 태국 윌자이포른 "'쏨땀'은 우리 집 마음의 고향이예요"
그녀는 "쏨땀(파파야 샐러드)만 하면 남편도 아이들도 태국을 기억할 수 있다"며 "한국 배추도 쓰지만 식감은 역시 파파야가 최고"라며 한 봉지 더 챙겼다.
쏨땀 재료
덜 익은 파파야(풋파파야)
생땅콩(볶음용)
라임
피시소스·팜슈가
마늘·레몬그라스
태국 고추(건고추·생고추)
▷ 베트남 사티흐엉 "짜조는 겉바속촉이예요"
그녀는 "베트남식 튀김만두인 '짜조'를 상추에 싸서 소스에 찍어 먹으면 환상이죠. 한국에서는 그 맛을 아는 사람이 드물어요" 라며 소스 재료를 두 번 확인했다.
짜조 재료
라이스페이퍼(반짜이)
돼지고기 다짐육
목이버섯·당면·당근
숙주
피시소스·설탕·마늘
라임
▷ 파라과이 빠뜨리시아 "옥수수 향이 나면 고향이 떠올라요"
빠뜨리시아는 시장에 들어서면 무조건 곡물 코너로 향한다. 파라과이식 옥수수빵 '치파과수(Chipa Guasu)'와 스프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녀는 "치즈가 녹아 퍼지면 파라과이 시골집 아침 냄새가 난다"며 치즈 블록을 꼭 쥐었다.
파라과이식 요리 재료
옥수수가루 1㎏
옥수수 앙금(없을 경우 캔 옥수수로 대체)
치즈 블록(파라과이 카쏘 치즈 대용)
버터
계란
감자·양파·파 등 스프용 채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