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개울가로 물러난 퇴계' 펴낸 이동원 전 대구교육연수원장

입력 2025-12-17 14:12:42 수정 2025-12-17 15: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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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철학,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정신적 가치"

이동원 전 대구교육연수원장이 최근 펴낸 책
이동원 전 대구교육연수원장이 최근 펴낸 책 '개울가로 물러난 퇴계'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퇴계 이황(1501~1570년)은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는 대학자다. 초등학생도 이름을 알 정도로 유명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를 '학문적 거목' 정도로 기억하는데서 그친다. 그가 어떤 인품을 지녔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게다가 '퇴계(退溪)'라는 호가 '나의 고향 시냇가로 물러나겠다'는 의미라는 걸 아는 이는 더더욱 드물다.

최근 출간된 '개울가로 물러난 퇴계'(교육과학사)는 퇴계가 어떤 인물이었고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오늘날까지도 널리 존경받는 인물로 남을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이동원(79) 전 대구교육연수원장이 썼다. 그는 교육학 박사이자 초등학교 교사, 장학관, 초등학교장 등으로 40여 년 동안 교육 현장에 몸담아 왔다. 2009년 정년퇴임 후 2012년부터 10년간은 경북 안동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서 학생과 일반인들에게 퇴계의 선비정신을 전하는 일을 했다.

15일 이 전 연수원장을 만나기 위해 대구 달서구 자택을 찾았다. 집 현관엔 '몽천재(蒙泉齋)'란 현판이 걸려 있다. 안동 도산서당 아래에 있는 샘 '몽천(蒙泉)'에서 따온 당호다.

그의 서재엔 퇴계와 관련된 것들로 빼곡했다. 책장엔 퇴계 선생과 관련된 수십여 권의 책이 빼곡이 꽂혀 있다. 책상에 깔아놓은 유리판 아래엔 퇴계의 표준영정이 그려진 1천원권 지폐가 있다. 입구 쪽 벽면엔 퇴계의 사상을 대표하는 '경(敬)' 자를 새긴 액자가 걸려 있다. 퇴계는 단순히 학문 탐구에 머물지 않고 인간 내면의 수양과 실천윤리를 강조한 사상가였다. 그의 대표 사상인 '경'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늘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를 뜻한다.

이 전 연수원장은 "'경'으로 대표되는 퇴계의 철학은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정신적 가치"라고 말했다.

개울가로 물러난 퇴계
개울가로 물러난 퇴계

-이 책을 포함해 그동안 8권의 책을 냈다. 대부분 교육학과 관련한 책이었고 대중적인 교양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을 낸 동기가 궁금하다.

▶퇴임 후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측의 요청을 받아 2012년부터 10년 동안 퇴계 선생의 선비정신을 전하는 일을 한 게 계기가 됐다. 퇴계 선생의 후손으로 선생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퇴계 선생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끼게 됐다. 선생이 생전 어떤 말씀을 하셨고 어떻게 처신을 하고 어떻게 인간관계를 하셨는지가 보이게 된 거다. 이런 부분들을 진작 좀 알았다면 교사 시절 아이들에게 보다 많은 걸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리곤 생각했다. 지금 여기서는 이곳의 일에 충실해야 하니 책을 쓸 순 없지만, 이 일에서 물러나면 꼭 일반인·청소년에게 퇴계 선생을 소개하는 책을 써야겠다고.

-질문에 답하는 형식의 책 구성이 독특하다.

▶선비문화수련원에 있을 때 부원장 직책을 맡다보니 지도위원(강사)들이 오면 늘 제게 많은 질문을 했다. '도산서당의 방 완락재에 있는 서쪽 반침 공간은 왜 만들었는가' 등 소소하지만 다양한 것들에 대해 물어왔다. 이분들에게 시원한 답을 드리기 위해 몰랐던 부분에 대해선 자료를 찾아가며 공부했고 하나하나 기록했다. 이런 부분들이 이 책의 기초가 됐다.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선 퇴계 선생의 요람에서 무덤, 그리고 그 이후까지 5개 분야 20개 영역에서 200개의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기록했다. 퇴계 선생에 대해 누군가 물어볼 수 있고, 지인들이 가끔씩 제게 물어오는 것들이다. 어찌 보면 시시콜콜한 것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을 빠뜨리지 않고자 했다. 2부에서는 제가 그동안 외부의 요청을 받고 썼던 퇴계 관련 원고 6편을 실었다. 논문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이야기 수준이다. 독자들이 퇴계를 아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함께 담았다. 퇴계 선생의 학문적 깊이를 전하기보다는, 이를 통해 선생의 고고한 인품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동원 전 대구교육연수원장이 퇴계 선생의 사상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도훈 기자
이동원 전 대구교육연수원장이 퇴계 선생의 사상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도훈 기자

-어려운 점은 없었나.

▶2018년 낸 에세이집 '살며 생각하며' 같은 책은 개인의 생각을 쓰는 것이기에 정답이 없지 않나. 그러니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쳐나가면 된다. 반면 이번 책은 역사적인 인물에 관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기록해야 했다. 일일이 참고 자료를 찾고 교차 검증을 하며 오류가 없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퇴계 선생은 어떤 분인가.

▶젊은 세대에겐 '악조건을 극복한.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선비'였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가난한 양반집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퇴계는 태어난 지 7달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가르침이라곤 한 번 도 받아보지 못한 채, 지금으로 치자면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다. 병치레도 잦았다. 가난한 탓에 서당도 다닐 수 없었다. 6살엔 이웃집 할아버지한테 천자문을 배우고 12살엔 숙부께 논어를 배우는 식이었다.

과거 시험도 수차례 낙방하고 조선시대 합격자 평균 연령인 34세에 합격했다. 소위 말하는 천재형도 아니었던 거다. 게다가 10대 때까지 예안과 안동을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을 정도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처지였다. 가정적으로는 크고 작은 불행이 연이어 일어났다. 그럼에도 그는 부모나 세상을 원망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자포자기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극복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최고의 학자와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다는 점을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 세대가 본받았으면 한다.

'배운 대로 실천한 인물'이란 점도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다. 퇴계만큼 철저하게 공자, 맹자, 주자 등 성현의 가르침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한 선비는 드물지 않나 싶다.

이동원 전 대구교육연수원장이 최근 펴낸 책
이동원 전 대구교육연수원장이 최근 펴낸 책 '개울가로 물러난 퇴계'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뒤쪽 벽면에 퇴계의 사상을 대표하는 '경(敬)' 자를 새긴 액자가 걸려 있다. 김도훈 기자

-성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나.

▶퇴계가 70세 되던 해의 일이다. 서울 성균관에서 유학하던 맏손자가 아들을 얻었다. 퇴계에겐 첫 증손자였다. 하지만 아기가 연년생으로 태어나면서 산모가 젖이 부족하게 되고 갓 태어난 아이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때마침 퇴계가 머물던 예안 집에 학덕이라는 여자 하인이 출산을 한다. 손자는 할아버지 퇴계에게 학덕을 유모로 삼고자 서울로 보내달라고 편지를 썼다. 하지만 퇴계는 다음과 같은 답장을 써서 보내며 거절한다.

"젖 먹일 종이 3, 4개월밖에 되지 않은 제 자식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은 그 자식을 죽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근사록에서 이르기를, 남의 아이를 죽여서 자기 아이를 살리는 것은 매우 불가하다고 했는데, 지금 이 일이 꼭 이와 같다. 서울 집에도 반드시 어떤 젖먹이는 종이 있을 터이니, 당장은 학덕을 제 아이와 살게 하다가, 학덕의 아이가 죽을 먹을 수 있을 때가 되어 올려 보낸다면 둘 다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는 게 정말 옳지 않겠느냐"는 내용이다. 아쉽게도 젖을 얻어먹지 못한 퇴계의 증손자는 결국 1년을 넘지 못하고 죽고 만다.

당시 사회 체제에서 노비는 재산과 같았다. 매매의 대상이었고 생사 문제도 주인 권한이었다. 하나뿐인 증손자를 잃으면서도 집안 노비의 어린 딸을 살리는 퇴계의 결정은 당시 엄중한 신분 사회를 감안할 때 보통 사람으로서는 행하기 어려운 행위였다. 신분의 귀천에 따라 다르게 대하지 않는 퇴계 선생의 생명존중 사상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밖에도 현감에게 세금 면제를 청탁한 제자들을 크게 꾸짖은 일화 등 선생의 인품과 덕망을 보여주는 일화는 수없이 많다.

-'개울가로 물러난 퇴계'의 지은이로서, 혹은 40여 년 교편을 잡은 교육자로서 젊은 세대에게 당부하고픈 얘기가 있을 것 같다.

▶'좀 길게 내다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젊은 세대가 삶을 자조하며 쓰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의 줄임말)이란 표현처럼, 지금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처지나 환경을 너무 의식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는 그런 습성이 있지 않나 한다.

퇴계가 자란 환경은 '이생망'으로 자조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금수저' '은수저'도 아니었다. 머리가 뛰어난 천재형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충실했고, 오늘날까지도 존경받는 인물로 남았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도 남들과 비교하며 포기하지 말고 멀리 내다보고, 퇴계처럼 자신에게 좀더 충실한 그런 정신을 가졌으면 좋겠다. 자신에게 충실하다 보면 분명 어떤 길은 찾아진다. 그 길이 꼭 남들과 같은 길일 필요는 없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