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고립보고서]한 평 남짓 방에 갇힌 사람들…"아파도 병원 가기 두려워"

입력 2025-12-16 16:39:37 수정 2025-12-16 19:2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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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고립보고서]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대구 쪽방주민 약 530명…그중 절반 이상 비산7동·성내2동·신암4동·대신동에
섬유·공구 산업으로 호황 맞았지만…1990년대 후반 도심 빈촌으로 전락
최저 주거 기준에도 못 미치는 방 안에서 '침전 고립'

서구 비산7동의 한 쪽방 건물. 신중언 기자
서구 비산7동의 한 쪽방 건물. 신중언 기자
김완수(56) 씨의 방. 김 씨는 이 좁은 방에서 TV를 보며 술을 2병씩 마시는 게 일과다. 신중언 기자

서대구고속버스터미널 남쪽으로 오래된 상가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그 사이로 난 골목에 들어서면 서구 비산7동의 속살이 드러난다. 붉은 벽돌과 시멘트로 덧씌운 건물들 사이에 '여관', '여인숙'이라 적힌 작은 간판들이 숨어 있다. 오래된 여관이나 여인숙, 일반 주택을 개조한 건물들이다.

입구는 대부분 열려 있지만 대부분 어둡다. 인기척도 없고, 사람이 사는지조차 분간하기 어렵다. 문 옆에 붙은 '달셋방 있음'이라고 휘갈겨 쓴 종이만이 이곳에도 사람이 산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비산7동의 시멘트 벽돌조의 2층짜리 다세대 건물인 'A여인숙'. 50년이 넘은 이 건물 내부에는 곰팡내와 오래된 양념 냄새, 담배 냄새, 관리되지 못한 공용 화장실 냄새가 뒤섞여 났다. 바깥을 다른 건물 벽이 막고 있어 환기가 안 됐다. 복도를 중심으로 17개의 쪽방이 촘촘하게 채워져 있었다. 흐린 전등이 비추는 방문에는 낡은 번호판이 달려 있었다. 6번 방은 김완수(56) 씨의 거처다.

한 걸음이면 벽에서 벽까지 닿을 수 있는 좁은 방. 각종 쓰레기들이 찌든 이불 위로 술병과 담배꽁초, 각종 레토르트 식품이 높게 쌓여있었다. 방 대부분을 쓰레기 더미에 내준 탓에 한 뼘 방바닥에 웅크린 채 자야 한다. 그는 이 방에 매달 월세를 15만원씩 내고 있다.

이토록 열악한 환경이지만 김 씨가 외출하는 날은 드물다. "귀찮어." 그는 대신 방 안에서 TV를 틀어둔 채 술을 2병씩 마신다고 했다. 옆방도 비슷한 처지인 듯했다. 얇디얇은 합판 벽 사이로 옆방의 TV 소리와 낮은 기침소리가 그대로 넘어왔다.

중구 교동의 무료급식소
김완수(56) 씨의 방. 김 씨는 이 좁은 방에서 TV를 보며 술을 2병씩 마시는 게 일과다. 신중언 기자

◆쪽방촌 몰린 곳에 무연고 사망도 많아

쪽방촌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구도심의 뒷골목 같은 그늘진 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곳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관심에서 밀려난 끝에 스스로를 돌보는 것조차 포기한 사람들이 많다.

대구쪽방상담소 등에 따르면 현재 대구의 쪽방주민은 약 530명 정도다.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서구 비산7동(약 90명), 중구 성내2동(80명), 동구 신암4동(70명), 중구 대신동(60명)에 몰려있다. 쪽방 건물과 방 개수로 따져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 비산7동에는 11개 건물 157개 방, 신암4동에는 8개 건물 131개 방, 대신동에는 7개 건물 102개 방이 모여 있다.

쪽방이 몰린 동네에는 외로운 죽음이 잠복해 있다. 지난 2년간 대구에서 인구 대비 무연고 사망 비율이 가장 높았던 행정동은 비산7동(0.216%)이었다. 이어 성내2동(0.177%), 산격1동(0.174%), 동인동(0.144%) 등이 뒤를 이었다. 대신동도 0.107%를 기록했다. 쪽방촌과 고립사의 상관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구의 쪽방촌과거 산업의 중심지였다가 쇠락한 곳이라는 특징이 있다. 당시 인부들이 묵었던 여관과 여인숙이 지금의 쪽방이 됐다. 비산동과 대신동은 섬유 산업 중심지로 과거 1970~8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했었다. 북성로와 대구시청을 품고 있는 성내2동·동인동은 공구 산업이 발달해 1970년대 후반에 호황을 맞았지만, 1998년 검단동 유통단지로 상당수 업체가 빠져나가면서 도심의 빈촌으로 전락했다. 하루 몇만 원을 받던 여관·여인숙은 방을 쪼개 저렴하게 임대하는 주거 형태로 전환됐다. 이것이 오늘날 쪽방촌의 출발점이다.

대구의 쪽방은 지역마다 성격이 다르다. 중구는 1950년대 지어진 건물이 많고, 서구는 70~80년대 건물, 동구는 상가형 건물이 섞여 있다. 건물의 연식에 따라 월세 수준도 달라진다. 중구와 서구는 20만 원 안팎, 동구는 30만 원 수준이다.

◆최저주거기준 아득히 미달⋯감정은 전염된다

비산7동의 또 다른 쪽방에서 사는 남경태(55) 씨는 김 씨보다 1만원 더 비싼 방에 산다. 형편도 조금 더 나은 편이다. 방도 조금 더 넓었고 개방형 구조의 건물이라 방문만 열면 햇볕을 쬘 수 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방 안에 누워만 있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꿈이요? 있겠습니까? 가족도 없는데." 기자의 질문에 남 씨는 황당한 듯 웃었다. 주변 이웃들도 비슷할 거라고 했다. "다들 대낮부터 취해서 횡설수설하는데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남 씨 역시 집이나 공원에서 막걸리 한잔하는 게 유일한 낙이다. "나도 내가 부끄러운데 친구를 어떻게 만듭니까. 있던 친구들도 연락 끊겼는데⋯."

이런 환경은 이웃을 경계하고 불신하게 만들었다. 쪽방 거주민 중에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립을 강화하는 사례도 있었다. 정기범(55) 씨가 그랬다.

"난 가비지(garbage·쓰레기)죠. 돈도 없고 뭣도 없어요." 부산 출신이라는 정 씨는 2017년 대구에 왔다. 2년간은 아는 동생 집에서 얹혀살았고 그 뒤로는 쪽방을 비롯한 최저주거기준 이하의 집에 거주했다.

정 씨는 자주 영어를 섞어 말했다. 부산에서 살던 적에 대기업 자본의 대형 서점에서 근무해서 외국인을 많이 상대해 봤다고 했다. "'나홀로 집에'란 영화 알죠? '홈 얼론'. 그 영화 보면 애가 혼자 집에 사는데 유쾌하잖아요?" 그는 마치 재미난 얘기라도 하듯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똑같이 혼자 사는데, 난 지옥이에요. 하하."

비산7동 쪽방에서 도합 4년을 지내는 동안 이웃들과 많은 불화를 겪었다. 그래서 이사도 두 번이나 해야 했다. "술 먹고 꼬장 부리는 놈들이 많아요. 그럼 나는 나이 안 따지고 샤우팅을 하거든." 그는 쪽방에서 인연을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말끝을 갈았다. 쪽방에서의 친분이란 대개 술을 매개로 이어져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벽간소음도 이웃 간 불화의 요인이다. "아파트 층간 소음은 잽도 안 된다니까요. 한숨소리까지 다 들리니까 더 예민해지고요."

"차라리 죽어버릴까란 생각을 많이 해요. 내가 어떤 '테두리'에 갇혀있다는 생각도요. 아마 남은 생에서 이 테두리 밖을 벗어날 일은 없겠죠."

◆"어디가 아픈지 몰라요"⋯술과 병, 고립 악순환

7일 대구 중구의 한 쪽방촌에서 한 어르신이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중구 교동의 무료급식소 '요셉의 집'. 가난한 이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이곳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긴 줄을 이뤘다. 신중언 기자

중구 교동의 무료급식소 '요셉의 집' 앞엔 아침 댓바람부터 여러 무리의 남자들이 긴 줄을 이뤘다. 노숙인과 쪽방 주민들에게 밥을 먼저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이곳의 규칙이다. 이희준(50·가명) 씨도 밥을 먼저 먹는 쪽이다. 9년 전 본가에서 쫓겨난 뒤로 노숙과 쪽방을 전전하다 성내2동의 한 쪽방에 정착했다. 그는 매주 2~3일은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화요일이면 대구역 광장에 들러 무료 도시락까지 챙긴다. 특별한 날에 제공되는 부식은 비닐봉지에 담아가 술안주로 쓴다.

이 씨는 알코올 중독을 앓고 있다. 알코올은 삶의 많은 것을 증발시켰다. 집에서 쫓겨난 것도 그놈의 술 때문이다. 경북 영천에서 농사를 짓는 이 씨의 부모는 그를 치료하기 위해 꽤 오랜 시간 노력했었다.

"내가요, 알코올 중독 상담사가 찾아와도 치료받기 싫다고 했어요." 이 씨는 낡은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은 채 말을 쏘아댔다. "예전에 정신병원도 갔다 왔는데 그땐 아무 문제 없다 했거든요." 그는 영천 시골집에서 다시 살고 싶은 맘은 굴뚝같지만, 면목이 없다고 했다.

몸이 아파도 병원을 찾지 않는 이들도 많다. 비산7동 쪽방주민인 권희재(49·가명) 씨는 과거 고등학생 시절만 해도 마라톤 선수를 했을 정도로 체력에 자신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10년 전 어머니를 암으로 잃은 뒤 술에 의존하게 됐고, 어느덧 쪽방까지 이르렀다.

"두통이 심하긴 한데, 병원을 가지 않아서 어디가 아픈지 몰라요." '왜 병원에 가지 않느냐'고 묻자 권 씨는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암 유전력을 걱정했다. 그러나 매달 76만원가량의 수급비를 받는 처지에 걱정거리를 늘리느니 술을 마시고 잊어버리는 편이 나은 선택이었다.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나 회사 지원 받아서 검사받는 거 아닌가요?"

권 씨를 만나고 몇 주 뒤, 취재진은 그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연락했지만 "수신이 정지된 전화"라는 안내를 받았다. 쪽방 관리자도 담당 복지사도 그의 행방을 몰랐다. 모종의 이유로 잠적을 한 것이라 추정할 뿐이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좁은 쪽방서 가라앉는 사람들

쪽방촌은 네 유형 중 가장 극단적인 고립 양상을 보였다. 최저주거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관계망이 단절된 상태에서 회복의 동력까지 소진된 '침전 고립'이 발생했다.

7일 대구 중구의 한 쪽방촌에서 한 어르신이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쪽방은 보증금 없이 월세나 일세를 내고 머무는 1평 남짓의 방이다. 취사와 세면, 화장실은 공용공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벽도 부실해 주민들은 추위와 더위를 온몸으로 버티며 산다. 거리에서 노숙을 하기 전, 가장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주거 형태다.

쪽방에는 공동 공간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주하는 관리인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가 쪽방주민들의 사회 관계망 형성에 큰 도움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웃에 대한 불신과 폭력이 팽배할뿐더러, 친해진다 한들 서로를 더 깊은 고립으로 끌고 가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쪽방 현장을 동행한 염강훈 복지사는 "쪽방주민들이 쪽방에서 맺는 관계는 상호 파괴적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다. 주거 특성상 사람 간 접촉이 많아 고독사 발견이 조금 빠를 수는 있으나, 사회적 고립이 나아지는 형태는 결코 아니다"라며 "이처럼 단절이 고착화된 상태에선 원룸, 빌라 등 더 나은 환경으로 이사를 가도 고독사 위험은 그대로일 것"이라고 했다.

신은경 서구사회적고립센터 과장은 "쪽방주민들의 삶은 늘 열악하고 불안정하다. 그 때문에 복지 개입의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한다"라며 "혹서기에는 시골이나 모텔로 피신하는 분들도 있어 접촉이 어려운 상황도 발생한다. 또 수급비를 받기 위해 주소만 등록해 두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신 과장은 "쪽방은 보증금이 없기 때문에 월세가 한 번만 밀려도 바로 나가야 한다"며 "술값으로 수급비를 탕진해 월세를 못 내는 경우도 종종 나온다. 이 경우 노숙인이 되며 범죄나 폭력 등 외부에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열악하고 불안정한 공간에는 경제적 실패와 가족 해체를 겪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비슷한 처지의 이웃들은 우울과 체념을 서로에게 전염시키며, 서로를 침전시킨다.

유경진 대구쪽방상담소 간사는 "쪽방주민들은 늪에 빠진 것처럼 살아간다. 단순히 '개선 의지가 없다'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일해서 돈 벌기 싫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회가 말하는 의지와 이분들에게 요구되는 의지가 다른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프로그램 좀 참여해보라'고 쉽게 말하지만, 이분들에겐 그 말 자체가 너무 먼 이야기일 수 있다"라며 "쪽방주민들을 둘러싼 환경이 새로운 시도를 막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설명했다.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침전된 고립의 양상은 분명했다. 본지가 쪽방 거주 고립 가구 14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7%(8명)는 연락 가능한 가족이나 지인이 전혀 없었다. 일주일 기준 10분 이상 대화한 날이 '전혀 없었다'는 응답자는 71%(10명)에 달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없다'고 답한 비율도 36%였다. 공동생활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깝게 느끼는 사람으로 '이웃'을 꼽은 응답은 7%에 불과했다.

이처럼 극심한 사회적 관계 결핍에도 불구하고, 응답자의 절반은 외로움이나 우울감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는 고립이 장기화되며 관계망 붕괴가 일상으로 굳어져, 객관적 상태와 주관적 인식 사이의 괴리가 커진 결과로 보인다.

자존감과 자기효능감이 낮은 쪽방주민들은 알코올 의존과 만성질환이 겹치면서 노동·건강·관계의 세 축이 동시에 무너진 사례가 많았다. 병으로 몸이 약해지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고, 관계가 끊기면서 술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실제로 쪽방주민들 중에는 "몸은 아픈데 병원을 안 가서 어디가 아픈지 모른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와 관련 박종명 대구의료원 공공의료본부장은 "쪽방주민 중에는 치료에 대한 본인 의지도 약하고 비용적인 문제로 망설여 병이 깊어진 후에야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당장 아픈 데가 없는데 내가 왜 가야 하냐는 식"이라며 "대개는 우울증, 조현병, 양극성 정동장애, 알코올 중독을 동반한다"고 밝혔다.

박 본부장은 "거동이 불편해지면 집에만 있고, 몸이 힘들면 우울해지고, 결국 술에 기대는 연쇄작용이 자주 관찰된다"라며 "이 연쇄를 끊기 위해서는 담당 공무원과 복지사의 판단과 행동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대구보건대의 연구지원과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의 기획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