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훈칼럼] '내란이 없었다면 만들어내면 되지'

입력 2025-12-15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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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훈 논설주간
정경훈 논설주간

소련 역사에 '예열재판'(豫熱裁判)이란 것이 있다. 소련 산업화 초기에 발생한 처참한 실패를 변명할 구실을 찾기 위한 재판으로, 1928년 '샤흐티 재판'이 그 첫번째다. 캅카스 북부에 위치한 샤흐티 광산의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떨어지자 소련 당국은 엔지니어 53명을 공개 재판에 넘겨 5명을 총살하고 44명을 투옥했다. 죄목은 '제국주의 영국과 공모한 소비에트 경제 사보타주 음모'였다.

폴란드 출신 영국 철학자 레셰크 코와코프스키는 노동시장이 폐지돼 노동력의 자유로운 판매와 노동자간 경쟁이 사라진 소련 경제체제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임금 노동이 사라지면 강제노동만 남을 뿐"이라고 했다.('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 제3권 황혼기') 강제노동은 더 열심히 일할 유인(誘因)을 주지 않는다. 샤흐티 광산의 생산량 저하는 소련 체제 자체의 모순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를 인정할 수는 없었다. '악마'를 만들어내야 했다. '국내 반동 세력과 외국세력이 결탁한 사보타주 음모'가 바로 그것이다.

샤흐티 재판 2년 뒤에 '산업당 재판'(Industrial Party Trial)이 열렸는데 이 재판에서도 소련 당국은 '음모론'을 써먹었다. 2천명의 당원을 거느린 비밀 정당인 산업당이 프랑스 파리를 근거지로 한 반공주의자 러시아인들과 협력하고, 프랑스 정보기관의 지원을 받아 소련을 타도할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음모가 정말 존재했는지는 상관없었다. 만들어내면 됐다.

집권세력의 '계엄=내란' 몰이가 딱 그 꼴이다. 내란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형법상 내란죄의 요건은 '국토의 참절(僭竊)'과 '국헌(國憲) 문란 목적의 폭동'이다. 국토 참절은 불법적 방법에 의한 국토의 일정 지역 장악을 의미한다. 비상계엄으로 그런 사태가 있었나? '국헌 문란'은? 형법 제91조는 국헌 문란을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계엄 당시 이런 사태가 있었나? 계엄군이 투입됐지만 국회는 정상적으로 기능해 계엄 해제를 표결하지 않았나?

그러나 내란은 미수(未遂)여도 처벌받는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법정 증언에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그 지시는 실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시가 사실이라면 내란 미수 죄가 성립한다. 그러나 그의 증언은 실제 비화폰 통화 기록과 어긋난다. 파이낸스 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곽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과 통화 이전에 1공수여단장에게 "문을 부수고 들어가 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했고, 1공수여단장은 직후 대대장들에게 이 지시를 전달했다. 그 뒤 윤 전 대통령과 곽 전 사령관의 통화가 있었고 여기서 윤 전 대통령은 현장 상황을 묻고 "수고하세요"라는 말로 통화를 종료했다. 즉 곽 전 사령관이 윤 대통령으로부터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주장은 시간 순서에서 맞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지시는 없었다는 게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의 주장이다.

이런 문제 뿐만 아니라 내란특검이 계엄 당시 윤 정부 국무위원들과 여당 원내대표였던 국민의힘 의원, 전 여당 대표에 대해 내란 관련 혐의로 6번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5번이 기각됐고, 영장이 발부된 경우도 내란 관련 혐의가 아니라 윤 전 대통령의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를 소방청장 등에 전달한 '직권남용' 혐의였다는 사실도 '내란 몰이'를 초라하게 한다. 구속영장 기각이 무죄 선언은 아니지만 내란 특검의 폭주에 제동이 걸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내란특검이 윤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한 혐의도 내란이 아니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이다.

그럴수록 이재명 대통령은 '내란 몰이'에 박차를 가한다.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내란은 현재 진행중"이라고 했다. 과연 그런가? 지금 국토가 참절 상태인가? 국가기관이 마비돼있나? 무엇보다 '집권자에 의한 내란'이란 설정 자체가 넌센스 아닌가? 그런 점에서 '내란 몰이'를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내란이 없어도 상관없다. 만들어내면 되지'
왜 이럴까?

대통령이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고 있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국민의 시선에서 이를 떼어놓으려면 치부(恥部)를 덮을 '거악'(巨惡)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내란 만큼 좋은 재료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