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고립보고서] "난 가족의 ATM기였다" 뇌성마비 청년의 절규…대학교 담장 밖의 고립

입력 2025-12-10 15:37:25 수정 2025-12-10 16: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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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고립보고서] 대학가 담장 밖에 갇히다
복현1동·신당동, 대학가 사이 저렴한 원룸·고시원촌…사회 관계망 단절
프라이버시 민감도 높아 복지 개입에 거부감
"복지관 접근성 떨어져…주민 커뮤니티 공간도 부족"

지난달 4일 대구 북구 한 원룸에서 이동건(46)씨가 홀로 생활을 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달 4일 대구 북구 한 원룸에서 이동건(46)씨가 홀로 생활을 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달 4일 대구 북구 한 원룸에서 이동건 씨가 약을 복용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경북대 동문 담장 너머로 중간고사를 마친 학생들의 재잘거림이 들렸다. 삼삼오오 모인 무리에서 웃음과 한숨이 뒤섞였다. 담장을 따라서는 비슷한 형태의 원룸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이어졌다. 원룸촌 안으로 파고들수록 주변은 적막했다. 행인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건물 사이로 난 골목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았다. 복현1동 행정복지센터를 지나 복현종합시장 쪽으로 향하자, 1970년대에 지어진 낡은 건물들 사이로 고시원이 하나둘 드러났다.

북구 복현1동은 경북대와 영진전문대 사이에 낀 원룸촌이다. 대학생들의 단기 주거지가 몰려 있다. 지난달 기준 전체 인구 6천932명 중 절반에 가까운 3천373명이 20~30대다. 2010년대 도시형 생활주택 붐을 타고 급격히 팽창한 이 지역의 1인 가구 비율은 약 77%. 북구 23개 행정동 가운데 가장 높다. 복현1동은 대구에서 인구 대비 고독사 위험군이 가장 많은 동네이기도 하다.

◆경북대 원룸촌, 대구 '고립 1번지'의 민낯

이동건(46) 씨의 집은 원룸촌의 한 좁은 골목 두 번째 건물에 있다. 좁은 현관에는 신발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8만원짜리 방. 현관에 부엌이 딸린 3평 남짓 원룸이다. 세간은 단촐했다. 선반 위에는 약통 8개와 소주 2병이 있었다.

동건 씨는 "복현1동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까지 보낸 토박이"라고 했다. "3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됐어요. 그때부터 다른 가족들과의 연락도 끊겼죠. 어머니도 어릴 적에 돌아가셨거든요."

그는 뇌전증을 앓고 있다. 돌발적인 발작 증세 때문에 직장을 가질 수 없다. 몇 년 전 구청 계단을 청소하는 공공근로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쓰러졌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피투성이가 됐다. 구청 공무원은 동건 씨에게 "더는 나오지 않는 게 좋겠다"며 불편해 했다.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던 동건 씨는 더욱 위험하고 불안정한 일을 찾아다녀야 했다. "결국 막노동뿐이더라고요. 그마저도 발작이 일어나도 모든 것을 내가 책임지겠다는 각서를 쓰고 했어요."

요즘은 막노동도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나빠져 방 안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 유튜브를 보면 시간이 빨리 간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질 때쯤이면 나쁜 생각들이 엄습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생활비로 빌린 돈들은 어떻게 갚을까. 숨이 턱 막혔다. 동건 씨는 "친구라도 만나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데, 다 가정이 있고, 사회인이기 때문에 못 본다"고 말했다.

지난달 4일 대구 달서구 신당동 고시원촌 일대 골목 전경.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달 4일 대구 북구 한 원룸에서 이동건 씨가 약을 복용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내가 도움을 청하면 과연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 걸요." 동건 씨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갑자기 발작이 왔는데 119에 전화 못 하면 고독사하는 거죠 뭐."

상황이 이렇지만 그는 복지의 개입을 반기지 않는다. 과거 사람에게 여러 번 속은 상처가 있어서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이 불편하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건 더 어렵다. "이 나이에, 쪽팔리잖아요. 동정받는 기분이 들고." 배가 고파 행정복지센터에 라면 몇 봉지만 부탁한 적이 있다. 담당 공무원은 후원물품이 다 떨어져 어렵다고 했다. "그날 이후로는 전화 안 했어요. 이 동네 복지관에서도 뭘 받은 적은 없어요. 아마 제가 이렇게 사는 것도 모를 걸요?"

동건 씨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원룸에는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로 마음의 문을 걸어잠근 청년들이 산다.

뇌성마비 1급인 김종하(가명·36) 씨도 그 중 하나다. 집 앞 편의점도 혼자서는 가지 못하지만, 그를 도와줄 가족이나 친구는 곁에 없다.

종하 씨는 늘 '이방인'이었다. 부모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이혼을 했다. 어머니는 곧 재혼했고, 아버지는 몇 해 뒤 세상을 떠났다. 갈 곳이 없던 종하 씨는 외가에 맡겨졌다.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도 소년은 꿈을 꿨다. 종하 씨는 보치아 선수로서 패럴림픽에 서고 싶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선수 활동을 하며 꿈을 향해 나아갔다.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을 해라." 외할아버지는 그 꿈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술을 마시면 말은 더 거칠어졌다. "얘 갖다버려라." "너 혼자 뭘 할 수 있느냐?" 종하 씨는 천천히 무너졌다. 결국 22살에 우울증이 찾아왔다. 보치아 선수의 꿈도 그 무렵 접었다.

외갓집을 떠난 뒤에도 그를 지켜줄 가족은 없었다. 재혼한 어머니를 찾아갔지만, 새 가족은 종하 씨의 기초생활수급비를 탐냈다. 온갖 명목으로 140만원 남짓한 수급비를 뜯어갔다. 외삼촌은 종하 씨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해 300만 원이 넘는 돈을 써댔다. 그 빚은 고스란히 종하 씨 몫이 됐다.

종하 씨는 결국 가족과 연을 모두 끊었다. "더 이상 내 인생을 방해하지 말라"고 말하고 돌아섰다. 그는 가족에게서 한 번도 보호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사랑을 느낀 적은 거의 없어요. 그냥 ATM기였죠."

◆주변과 단절된 고시원촌은 대학가의 외딴 섬

달서구 신당동은 계명대를 낀 대학가다. 분위기는 복현1동과 사뭇 다르다. 성서공단과 가깝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의 등굣길과 외국인 근로자들의 퇴근길이 겹친다. 식당과 술집이 모인 번화가라 밤에도 시끌벅적하다. 골목을 따라가면 중국어와 베트남어 간판이 얽힌 상가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 사이, 눈에 띄지 않게 고시원들이 끼어 있다.

지난달 4일 대구 북구 복현 1동 주택가 골목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줍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달 4일 대구 달서구 신당동 고시원촌 일대 골목 전경.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계명대 동문에 있는 고시원 열 곳 중 아홉 곳은 입구나 중문이 도어락으로 잠겨 있어 외부인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고시원 월세는 28~40만원 수준이었다. 창문이나 개인 화장실 유무 등에 따라 편차가 컸다. 옆방의 생활소음이 그대로 들릴 정도로 방의 방음 상태는 좋지 않았다. 대체로 샤워실과 세탁기, 주방 공간은 공유하는 형태였다.

"5년 넘게 살았는데 옆방 사람 이름도 몰라요. 서너 명 얼굴 아는 게 전부예요." 한 고시원에서 만난 입주민 김정식(48) 씨는 불편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는 고시원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낯선 듯 보였다. "고시원 산다는 게 자랑거리도 아니고…. 친하게 지낼 이유가 없죠. 대부분 혼자 방 안에서 술을 마시는 것 같아요."

고시원 관리자는 오히려 입주민 간 교류를 경계했다. "아니, 돈 있으면 이런 곳에 살겠어요?" 다른 고시원의 총무 박지훈(49‧가명) 씨는 방 밖을 나가지 않은 지 며칠은 된 것 같은 몰골이었다. "여긴 친해지는 게 오히려 위험해요. 돈 문제나 다툼이 생겨요. 경찰이 우리 고시원에 온 것도 지난달에만 10번이 넘어요."

◆고립돼도 복지 개입은 거부…'은둔 고립' 부르는 원룸고시원촌

대학가의 원룸·고시원촌저렴한 임대료에 이끌린 청년·중장년 취약층이 섞여 사는 지역으로 단기 체류자가 많다. '은둔 고립'은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된 원룸·고시원촌 거주자들이 외부 접촉을 회피하는 삶의 형태를 말한다.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특성이 확인됐다. 원룸·고시원촌 고립 위험군 13명 중 6명(46.2%)이 현재 거주지에서 산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이웃과 관계를 맺을 여건과 동기가 극히 부족한 환경인 셈이다.

원룸과 고시원에 사는 이들은 네 유형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외로움과 우울감을 호소했다. 외로움이나 우울감을 '거의 매일' 느낀다는 응답은 54%로 가장 높았다. 꾸준히 연락 가능한 가족 또는 지인은 평균 약 1.31명에 불과했다.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은 '가족'(46.2%)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는 관계의 축이 여전히 가정에 남아 있으며, 사회적 관계망이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았음을 시사한다. 다만 실제 교류 빈도가 낮은 점을 감안하면, 가정으로부터 단절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으로 복지사를 꼽은 응답자는 단 한 명(7.7%)뿐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원룸·고시원촌 고립 위험군의 '복지 회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프라이버시에 대한 민감도가 높고, 복지 개입에 대한 거부감이 두드러졌다. 또 한 건물에 비위험군과 위험군이 섞여 살기 때문에 위험군 식별이 어렵다는 점도 복지 개입의 난이도를 높였다.

지난달 4일 대구 북구 복현 1동 주택가 골목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줍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이와 관련 윤숙현 신당종합사회복지관 복지사는 "원룸·고시원촌 위험군들은 누가 찾아오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회에서 상처도 많이 받았고, 본인의 삶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와 같은 '복지 신청주의' 체제에서 이 같은 원룸·고시원촌의 '복지 회피' 성향은 일종의 사각지대로 작용한다.

윤 복지사는 이어 "복지사가 찾아가서 문을 두드려도, 문을 안 연다. 이처럼 복지제도에 거부감이 있기 때문에 본인이 수급자에 해당해도 제도 자체를 몰라 지원을 못 받은 사례도 있었다"라며 "타 주거 유형에 비해 복지관 접근성이 떨어지고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 부족한 게 주된 이유"라고 했다.

청년층 비중이 높다는 점 역시 원룸·고시원촌의 '은둔 고립'을 촉발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들 다수는 안정적인 노동이 어렵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무력감, 불안, 가정불화 등으로 인해 고립된 경우가 많았다.

지역의 위기 청년들을 대상으로 상담 등 지원 사업을 하는 청년베이스캠프 소속 김희숙 복지사는 사회적 고립의 여러 원인 중 '무기력'을 꼽았다. 김 복지사는 "성인이 되기 전, 학교에서는 상처를 받아도 선생님 등 누군가 도와줄 수 있는데, 사회에 나오면 뭐든 다 혼자 해야 한다"며 "사회활동을 하며 부당한 대우나 상처를 받은 경우, 자신감이 없어지고 위축될 수 있다. 여기에 무기력까지 더해지면, 사회적으로 완전히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기사는 대구보건대의 연구지원과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의 기획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