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에서 만난 순례의 산, 신의 발자국을 향한 여정
◆스리랑카 교통의 중심
스리랑카를 여행하다 보면 금세 깨닫게 된다. 이 나라에서 '이동'만큼은 세상 어디보다 쉽고, 또 따뜻하다는 것을. 낯선 땅의 교통이란 종종 여행의 피로를 더하지만, 스리랑카에
서는 오히려 여행의 즐거움이 된다. 다만 '최신식'이라는 기대는 내려놓는 것이 좋다. 낡
았지만 정겨운, 불편하지만 친절한 세계가 그 안에 있다.
국영버스 'SLTB'(Sri Lanka Transport Board)는 전국을 촘촘히 잇는다. 도시와 시골, 심지어 산골의 외딴 마을까지 연결하며, 이동 인프라가 부족한 이 나라의 '생활 동맥'이 된다.
버스의 외관은 다채로운 색채로 뒤덮여 있다. 주황, 청록, 자주색의 문양이 얽혀, 마치 한
대의 움직이는 그림처럼 도로를 달린다. 내부에는 조명과 장식이 번쩍이며, 불상과 꽃이 놓인 운전석 위로 향 냄새가 은은하게 퍼진다.
버스에는 세 명의 직원이 함께 탄다. 운전기사, 요금을 걷는 차장, 그리고 안내 담당자다. 목적지를 말하면 차장은 친절히 요금을 계산해 표를 건네주고, 잘못 탄 경우에도 어느 정류장에서 내리면 되는지 세세히 알려준다. 마치 여행자의 길잡이라도 된 듯 정성을 다한다.
정류장이 다가오면 천장에 매달린 밧줄을 당겨 하차 신호를 보낸다. 차장이 외치는 다음
정류장의 이름, 요란한 엔진음, 그리고 '스리랑카 뽕짝'이라 불리는 흥겨운 대중가요가
뒤섞인 소음 속에서도 묘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음악이 다소 시끄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어느새 리듬에 몸이 맡겨진다. 소리에 예민하다면 이어폰을 챙기는 것도 좋다.
스리랑카의 버스는 어디서든 탈 수 있다. 도로변에서 손을 흔들면 버스가 멈춰 세워준다.
거리의 어디든 곧 정류장이 된다. 좌석은 자유석이지만, 운전사 뒤의 자리만큼은 스님을 위한 자리로 비워두는 것이 예의다. 현지인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어주는 모습은 종교에대한 존중이 일상 속에 스며 있음을 보여준다.
중간 정차 시에는 간식과 음료를 파는 상인, 노래를 부르는 거리의 가수, 부적을 파는 장
사꾼들이 차를 오간다. 그들의 손짓과 웃음, 그리고 버스를 가득 채운 활기가 스리랑카의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때로는 버스가 소규모 택배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각 정류장에서 짐을 싣고 내리며, 물건과
사람, 웃음이 함께 오간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들의 따뜻함이다. 외국인은 드
물지만, 그만큼 현지인들의 배려가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기사가 앞자리에 앉히며 'view good!'이라 웃어주고,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hello!'를 외친다. 스리랑카의 버스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느리지만 다정한 삶의 속도로 달리는 작은 세상이었다.
◆ 아담스 피크 오르는 길
아침 6시,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세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산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스
쳐가는 푸른 차밭과 계곡, 작은 마을들. 그 서정적인 풍경 속에서 어느새 피로는 사라졌다.
11시, 드디어 아담스 피크(Adam's Peak)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의 공기는 이미 경건했다. 순례자들은 손에 감은 흰 명주실을 천천히 풀어내며 산을 오른다. 실은 곧 기도이고, 기도는 하늘로 닿는다.
현지 이름인 스리파다(Sri Pada) 는 '거룩한 발자국'이라는 뜻이다. 정상에는 거대한
발자국 하나가 새겨져 있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발자국, 힌두교에서는 시바 신의, 이슬람은 아담의, 기독교는 하느님의 발자취로 여긴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이 산은 4종교의 신들이 함께 머문 성산으로 남았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평생 세 번 아담스 피크를 오르면 천국에 간다'고 믿는다. 순례는 건기가 시작되는 12월부터 5월 초까지 이어지며, 수많은 이들이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밤길을 오른다.
가장 흔한 루트는 해튼(Hatton) 코스로, 7km 길이에 5,500개의 계단을 3~5시간에 걸
쳐 오른다. 여행자는 더 험하지만 자연이 살아 있는 쿠루위타(Kuruwita)~에라트나(Erathna) 코스를 택했다. 왕복 13km, 약 8~10시간의 여정이다.
산 초입에는 여러 종교의 사원이 나란히 서 있다. 부처와 시바 신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풍경은 이곳이 얼마나 관대한 신앙의 땅인지를 보여준다. 노승은 염불을 외우며 순례객의 손목에 하얀 실을 묶어준다. 여행자도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받았다. 짧은 축복의 순간이 지나자, 숲의 공기가 달라졌다. 새소리와 폭포의 물안개, 계곡의 바람이 그 길을 함께했다.
땀에 젖은 어깨 위로 배낭의 무게가 느껴지지만, 길은 고요했다. 계곡에 발을 담그자 닥터
피쉬가 발가락을 간질인다. 자연이 건네는 작은 위로였다.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은 산이 높아질수록 공기는 차가워지고,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오직 별빛만이 길을 비춘다. 아버지는 아이를 업고, 어머니는 품에 안고 오른다.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은 숨을 고르며, 승려들은 불상을 모시고 기도하며 올라간다. 그들의 발걸음마다 신의 이름이 담겨 있는 듯했다.
마지막 계단을 앞두고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옷을 껴 입어도 고산의 추위가 엄습
한다. 끝은 있는 걸까. 여기서 멈춰도 될까. 그때, 정수리에 별빛이 닿았다. 그 빛을 따라
한 발, 또 한 발 내딛자, 이윽고 정상의 사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의 발자국, 아담스 피크의 일출
정상은 소박했지만, 공기는 장엄했다. 정상 사원의 문 앞 돌기둥에는 장엄한 금색 종이 매
달려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아담스 피크에 오른 횟수만큼 종을 울리며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여행자도 종을 세게 한번 울렸다. 그 소리가 밤하늘로 퍼져나갔다.
붓다의 발자국이 새겨진 금빛 제단 앞에서는 모두가 맨발이다. 이곳 사진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지만, 그 신성한 순간은 마음 깊이 각인 되었다. '신의 발자국'이라 불리는 스리파다(Sri Pada). 그 이름이 왜 이토록 경건한지를, 그 앞에 서서 비로소 이해했다.
자정이 지나자, 산정은 순례자들로 가득했다. 사원 곳곳에서 모두가 밤을 지새우며 일출을 기다렸다. 찬 바람이 불고, 구름이 몰려왔다. 그 사이로 붉은 빛이 퍼지더니, 마침내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다. "Sunrise!"라는 외침과 함께 터져 나온 환호. 수천 명이 동시에 맞이한 일출은 그 자체로 기도였다. 순간의 찰나처럼 순식간에 구름 속에 사라진 태양.
해가 뜬 뒤 사원에서는 따뜻한 커피와 간단한 아침을 나눠준다. 피로가 녹아내리고, 사람들은 미소를 지으며 하산을 시작한다. 구름이 산허리를 스치고, 햇살은 봉우리를 넘어 흩어진다. 7km 하산길의 5,500개 계단마다 수많은 발자국이 남아 있다.
천천히 오르던 할머니, 아이를 업은 아버지, 불상을 모신 승려들. 그들의 걸음 하나하나가
바로 신의 발자국, 스리파다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