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용품, 임신 정보 유출에 스타트업 생존위협" 벤처업계 "정부 마이데이터 사업, 재검토 필요"

입력 2025-11-21 19: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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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용품 구매 이력부터 임신 진료 기록, 학교 성적까지. 정부가 추진 중인 '마이데이터' 전면 확대 정책이 현실화되면, 이처럼 민감한 정보까지 특정 중개기관에 고스란히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벤처업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추진 중인 '본인전송요구권' 전 산업 확대 정책이 기업 경쟁력 약화와 소비자 프라이버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이어지면서, 관련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전면 재검토 요구가 커지고 있다.

21일 서울 강남구 디캠프 선릉점에서 열린 '마이데이터 정책 스타트업 간담회'에서는 학계와 업계 관계자들이 한목소리로 해당 정책의 부작용을 지적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스타트업의 생존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강하게 표출됐다.

선문대학교 경영학과 김용희 교수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시행령이 통과될 경우, 약 200여 개 기업이 보유한 방대한 소비자 정보가 전문 중개기관에 자동으로 넘어가게 된다"며 "이는 소비자 개인의 사생활은 물론 기업의 핵심 영업 정보까지 외부에 노출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특히 민감한 개인정보가 다량 포함된 의료, 유통, 교육 관련 데이터가 한데 묶여 전송될 경우, 해킹이나 유출 사고 시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김 교수는 "임신 진료기록이나 성인용품 구매 이력, 자녀의 성적 정보 등은 사적 영역의 핵심인데, 클릭 한 번으로 중개기관에 전달되는 구조는 치명적"이라며 "기업이 수년간 쌓은 고객 주문 패턴, 가격 정책, 입점 판매자 정보 등도 마찬가지로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자산"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마이데이터 전면 확대는 개인정보보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이뤄진다. 개정안은 이달 말 규제개혁위원회 본심사를 앞두고 있으며, 통과 시 기존 의료·통신·에너지 분야에 한정됐던 개인정보 이동권이 교육·부동산·유통 등 거의 모든 산업으로 확대된다.

개정안의 핵심은 '영리 목적의 중개기관'도 법정 대리인처럼 개인정보 전송을 요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중개기관은 국민의 동의만 있으면 네이버, 카카오, 혹은 이들과 경쟁하는 중소 스타트업이 보유한 방대한 데이터를 일괄 수집할 수 있다. 특히 100만 명 이상의 정보주체를 보유하고 매출 1500억 원 이상인 기업이라면 산업 분야와 무관하게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이 같은 구조는 결국 스타트업의 독자적 경쟁 기반을 약화시키고, 자본력을 갖춘 대형 플랫폼 기업에 데이터가 집중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신동 교수는 "현 시행령은 행정부가 시장을 직접 설계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며 "입법권 침해 논란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정원준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도 "본인전송요구권이 단순히 정보 접근 권한인지, 활용을 위한 도구인지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며 "명확한 법리적 정리가 없는 상태에서 산업 전반에 강제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현장의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정책이 시행될 경우 창업 의욕이 꺾이고, 데이터 인프라 투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최지영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상임이사는 "스타트업이 가진 경쟁력은 기술 그 자체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고객 인사이트에 있다"며 "핵심 데이터를 경쟁사에 자동 공유하는 구조는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전송의무가 확대되면 스타트업 창업과 성장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초기 기업들이 개정안에 맞춰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100억 원 이상의 신규 API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한국벤처기업협회 유정희 본부장은 "데이터 중개를 위한 시스템 구축은 비용뿐 아니라 보안 리스크까지 포함돼 있어 중소 벤처기업에는 과도한 부담"이라며 "결과적으로 진입 장벽만 높아지고 산업 전반의 혁신이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일부 참석자들은 개정안이 도입될 경우, 데이터가 특정 대형 중개기관에 편중되면서 사실상 독점 구조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는 대형 플랫폼 기업에 유리하게 설계된 '기울어진 운동장'이 형성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지난 해 규제개혁위원회로부터 유통 분야 등의 확대 적용을 보류하라는 권고를 받았으나, 이를 뒤집고 올해 다시 개정안을 본심사에 올린 상황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스타트업 관계자와 학계 인사들은 이번 개정안이 지나치게 행정 중심의 구조로 설계돼 있다며, 다양한 산업 주체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정부는 오는 11월 말까지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를 마친 뒤 시행령 개정을 확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