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16일 봉산문화회관 2전시실
"첫 개인전 이후 28년 만의 전시라 설레기도, 두렵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가 제게는 다음 전시를 준비할 수 있는 새로운 원동력이 됐으면 합니다."
김영해 작가가 오는 11일부터 16일까지 봉산문화회관 2전시실에서 개인전 '사과의 피'를 연다.
그의 이력은 보통의 작가들과는 조금 다르다. 서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화가가 되기로 마음 먹고 고향인 대구로 내려와 계명대학교 서양화과에 편입했다. 대학원에 진학했어도 됐을텐데, 학부를 선택한 데 대해 그는 "워낙 기초가 없는 것 같아, 표현력 등을 배워서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갑자기 미술에 대한 열망이 생긴 것은 아니다. 그에게 미술은 어릴 적부터 친숙한, 운명과 같은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장과 (사)한국일러스트협회장을 지녔고, 대구시문화상과 대구미술협회 원로작가상 등을 수상한 김기한 교수다.
학부 졸업 이후 동 대학원에 진학해 97년 석사학위청구 졸업전시회를 열며 첫 개인전을 가졌고 박사과정까지 마쳤지만, 그 사이의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더 이상의 작업을 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 됐다.
그는 "두 아이를 키우려 작가의 길을 미뤄두고, 시간 배분과 활용이 자유로운 시간강사로 활동하며 미술 주변을 기웃거리며 살았다"며 "디자인 이론을 가르쳤는데, 미술사와 엮인 부분 등을 깊이 연구하며 나름의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20년 이상 강사로 활동해오던 그는 2018년, 한 전시회에 갔다가 큰 울림을 느꼈다. 다음날 바로 캔버스와 유화 물감 등 재료를 구입한 뒤, 그것들을 바닥에 늘어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오래전 묻어뒀던 꿈을 다시금 꺼내 보이게 된 시작이었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강사를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작업에 집중했다. 이번 전시는 그렇게 하나 둘 그려온 작품 18점을 모아 근 30년 만에 선보이는 그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그가 가장 먼저 그리기 시작한 '사과 열 알이 있는 정물'. 테이블 위 사과들이 공중부양하고 있지만, 그 앞에 선 사람은 실제 사과에는 관심이 없고 작가가 그린 그림 속의 사과만 바라본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세상 자체가 요지경인데, 세상보다 세상을 압축한 작품에 사람들이 더 열광하는 모습과 닮지 않았는가. 나는 이런 현상이 신기하고 궁금하다. 그래서 좀 캐보고 싶다."
그의 작품에는 사과가 자주 등장한다. 학창 시절부터 붓을 들고 무엇을 그려야 할 지 막막할 때, 늘 사과로 시작했기 때문. 그는 "사과는 내게 미술의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여는 열쇠"라며 "사과를 통해 그림의 공간으로 들어서고, 그것을 그리며 예술에 대한 생각을 펼쳐나간다"고 말했다.
이어 "사과를 그리며 구도나 조형적 원리를 고민했던, 연구자 같은 세잔의 진지한 자세를 좋아한다. 세잔에게 가장 말 잘 듣고 만만한 모델이 사과였던 것처럼, 나에게도 사과는 그런 존재"라고 덧붙였다.
전시 제목 '사과의 피'는 그가 지은 동명의 시에서 따왔다. 사과를 그리다 빨간 물감이 지문의 골 사이 스며들어버린 자신의 손가락을 보며 건네는 얘기다. 이미 사과의 피가 묻은 자신의 손을 이제는 예술의 바다에 담글 수밖에 없는, 기쁘고 설레면서도 불안한 예술가의 감정을 담았다.
"나도 내 속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할 때가 많아요. 그림이 마치 일기처럼, 내면을 찾아가는 과정 같습니다. 그리는 과정 내내 그림이 무얼 원하는지, 거기에 무엇이 숨어있는지 요리조리 탐색하며 내 생각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신경 안 쓰더라도, 제 스스로가 만족하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전시가 됐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