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멋진 실리콘 세계
단요 외 7명 지음/문학동네
지난주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인물은 1박2일 방한한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다. 두 대기업의 총수와 함께 프랜차이즈 치킨집에서 '치맥'을 즐기는 모습이 SNS를 달궜고, 과거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과 나눈 편지를 공개하는가 하면, 인공지능(AI) 학습에 필요한 핵심 반도체인 GPU 26만장을 한국에 공급하기로 했다.
이번 협상을 통해 해당 규모의 GPU를 확보하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세계 3위 수준의 GPU 보유국이 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이다. 인공지능이 금융, 의료, 교육 등 생활 곳곳 파고드는 속도는 기술이 인간을 돕는 단계를 넘어, 인류를 초월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과학 기술이 초고속으로 발전할 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이 도태되는 냉혹한 사회 시스템이 필연적으로 자리잡게 된다. 현대 사회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온 장강명 작가는 바로 그 지점을 조명하며, 한·중·일을 대표하는 여덟 명의 소설가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단편들을 책 한 권에 엮어냈다.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F'는 과학기술이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비판적으로 탐구한 장르로, 이전 장강명 작가의 소설집을 통해 독자들에게 한차례 소개된 바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보다 다층적인 시선으로 조명한 이번 프로젝트에는 '삼체' 3부작으로 아시아 작가 최초 휴고상을 수상한 중국의 대표 과학소설가 류츠신, 일본SF대상과 성운상을 수상하며 활발하게 활동해온 후지이 다이요가 참여했다.
여기에 한국 SF를 이끌어가는 단요, 우다영, 윤여경, 장강명, 전윤호, 조시현 여섯 명의 소설가도 함께 뜻을 모았다.
류츠신의 단편 '중국 태양'에는 소설 제목처럼 거대한 인공 태양이 등장한다. 햇빛의 양을 조절해 날씨와 강수량을 조정하며 기후·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획기적인 프로젝트다. 이 인공 태양의 표면을 닦는 노동에 농촌에서 베이징으로 돈을 벌러 온 주인공을 비롯한 청년들이 청소부로 발탁돼 우주로 향한다. 운영 측은 자금난을 덜기 위해 저임금의 저학력자를 고용했을 뿐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우주에서 청년들의 꿈은 더 커져간다.
"은색 대지에 서서 고향을 바라본다. 마을 어귀에서 어머니가 중국 태양을 올려다본다. 이 태양은 아들의 눈이다. 대지의 황토는 이 눈빛을 받으며 푸른 옷으로 갈아입을 것이다."('중국 태양' 중, 114p)
책에는 인공 태양뿐만 아니라 가까운 미래의 기술들이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여러 세계가 펼쳐진다. 아이들은 동물 로봇과 함께 자라고, 의식을 새로운 신체로 옮기거나 인공피부로 질병을 극복한다. 급기야 인공 자궁을 통해 출산하는 세계도 등장한다. 인공지능의 역할 또한 막중하다. 인간의 가족이 되거나, 크루즈에 탈 수 있는 사람을 직접 선별하며 지구를 향해 날아드는 블랙홀의 궤도까지 바꾼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장강명 작가는 '기획의 말'을 통해 "새로운 기술 환경에서 우리의 삶은, 사회는, 인간성은 어떤 도전을 받게 될까"라며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예언이 아닌 독자의 선택을 묻는 시나리오다. '이것이 환영할 만한 미래인가'라는 고민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인공지능이 이끄는 과학 기술의 발전은 매일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가져오지만, 동시에 '인간다움'의 영역은 조금씩 잠식되고 있다. 여덟 개의 세계를 지나 책장을 덮으니, 머지않아 근미래에는 '인간답다'는 말의 의미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오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순 없지만, 마지막 영역만큼은 기술이 영영 도달하지 않길 바란다. 적어도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나누는 대화는 기술도 대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432쪽, 1만8천5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