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공지능(AI) 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AI 산업의 필수 기반인 전력 확보에는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비해 공급 대책은 빈약하고, 추가 원전 건설이나 노후 원전 재가동 계획도 가시화되지 않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AI를 외치며 전력정책은 제자리걸음"이라며 정부의 재생에너지 중심 정책이 현실과 괴리돼 있다고 입을 모은다.
AI 산업의 확산은 곧 전력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엔비디아가 한국에 공급하기로 한 GPU(그래픽처리장치) 26만장을 모두 가동할 경우 필요한 전력은 약 800메가와트(MW)로, 초대형 원자력발전소 1기(1000MW급)가 1년 동안 생산하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여기에 국내 주요 기업들이 추진 중인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AI 팩토리까지 더하면, 산업용 전력 수요는 단기간에 폭증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부의 전력정책은 여전히 재생에너지 중심에 머물러 있다. 고리원전 2호기는 설계수명 만료를 이유로 2년 반째 가동이 중단됐고, 월성1호기도 가동을 멈추고 해체 절차가 논의 되고 있다. 고리1호기는 해체 작업이 시작됐다. 그러나 신규 원전 건설은 부지 선정 작업에서부터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수소환원제철 등 고전력 산업이 잇달아 늘어나는데도 정부의 대응은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단조로운 해법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박상덕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수석연구위원은 "정부가 AI 시대를 선언하면서도 전력정책은 여전히 재생에너지에만 의존하고 있다"며 "재생에너지 만으로는 AI 데이터센터를 안정적으로 돌릴 수 없다. 전력이 없으면 AI산업 발전은 허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 공정에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월성1호기를 인수해 한수원이 운전하고, 자사가 전력을 직접 쓰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정부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며 "정부가 재생에너지만 강조하다 보면 다른 에너지원은 방관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산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AI 산업의 속도는 전력 인프라의 속도 만큼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AI와 반도체 투자가 잇따르고 있지만 이를 떠받칠 전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고리2호기 재가동과 신규 원전 건설 등 현실적인 대안 논의가 더 늦어지면 국가 AI 산업 경쟁력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