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석 국민대 객원교수
서기 410년, 서고트족이 로마제국의 성문을 돌파했을 때 아무도 '팍스 로마나'가 하루아침에 붕괴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불길이 포룸을 뒤덮고 판테온의 청동 지붕이 녹아내렸으며, 여성들은 '야만인들'에게 유린당했다. 원로원의 회랑에는 침묵만이 남았고, 무적을 자랑하던 로마군단은 보이지 않았다. 시민들은 피하지도, 싸우지도 못했다. 천 년 문명의 심장부가 타들어 가는데도 사람들은 "내일은 다시 열릴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제국은 그날 이후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그로부터 3세기 반 뒤 역사는 반복된다. 실크로드의 동쪽 끝에서 극성기를 구가하던 당 제국 현종 시대, 궁중과 귀족에게만 향락이 넘쳐나던 밤, 북쪽 국경에서는 안록산의 군대가 이미 장안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태평성대'의 풍요 속에서 당 제국은 스스로의 종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역사는 "국가는 전쟁이 아니라, 자만과 방심 속에서 먼저 무너진다"는 사실을 거듭 웅변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도 비슷한 느낌이다. 단군 이래 최고의 번영 속에서, 조용한 지각 균열이 축적되고 있다. 경제력은 세계 10위권, 군사력은 5~6위다. 반도체·배터리·AI·K-방산·K-콘텐츠까지 세계가 주목한다. 'K'만 붙이면 세련되고 '힙한 것'으로 인정받는 시대다. 이 정도면 '성공한 국가' 아닌가. 그러나 언론을 보면 항상 불안하다.
우선 대한민국은 하드파워가 붕괴되고 있다. 제도의 균열과 무력화다. 입법독재로 시작된 삼권분립의 형해화는 심각하다. 법은 정의의 언어가 아니라 정치적 수사로 변했다. 국민은 더 이상 국가시스템을 믿지 못한다. 검찰의 배임적 항소포기는 그 상징적 장면이다. 하드파워도 심각하지만 더욱 뼈아픈 것은 소프트파워의 붕괴다.
언론과 시민사회는 민주주의의 파수꾼이다. '엔트로피 법칙'이 적용되는 권력은 항상 독재와 부패로 치닫는다. 이때 언론과 시민사회가 '워치 독'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감시견이 아니라 맹수의 파트너를 자임하거나, 냉소와 피로 속에 침묵한다.
풍요 속 이런 병리현상은 도덕적 타락을 동반한다. 당장 컴퓨터를 켜 '사이트 모음'이라고 검색해 보라. 포르노를 비롯한 온갖 불법 콘텐츠들이 너무 쉽게 제공된다. '방송'이라는 진지전 정쟁 속에, 공동체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방송통신심의기능이 완전히 마비된 지 1년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N-번방 사건'같이 떠들썩하지는 않지만, 조용하나 더욱 치명적인 붕괴가 축적되고 있다. 이어질 추락은 그동안 비상을 가능케 했던 날개가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일어날 것이다.
과거처럼 전쟁으로 망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조용히 추락하며 사라질 뿐이다. 이런 사회에서 아이를 낳으려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에 가까운 도전이다. 당장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소멸될 국가로 지목된다. 우리 국민이 그만큼 미래를 암울하게 전망한다는 뜻이다. 제도와 도덕, 공동체와 생명의 균열은 과거 제국들의 몰락이 남긴 경고와 다르지 않다.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무관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임계점으로 끓어가는 물에서 무방비로 앉아 있는 개구리와 같은 처신이다.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야당은 건강한 국민과 역사를 믿고, 검사나 판사는 법조인의 정의로, 군인은 수호자의 소명으로, 언론인은 선지자의 사명으로, 시민은 주권자의 목소리로. 그래야 지금의 번영은 아니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기회는 줄 수 있다.
개별적인 외침으로는 한계가 있다. 여권 언론의 주력은 '민언련' 등 시민단체와 '언론노조'다. 그 상징이 최민희 의원이고, 그 위에 맹목적인 팬덤을 이끌고 있는 김어준이 있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헤게모니를 쥔 것이 아니다. 40년 공정의 인고 끝에, 독점과 독주가 가능한 현재의 힘을 일궈낸 것이다.
대한민국 애국시민들은 그들에게 욕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서로 남 탓과 핑계만 대며 낭비할 시간이 없다. '축적의 시간'을 위해, 인내하고 배려하며 연대하는 모습을 배우고 체화해야 한다. 마르틴 루터의 유명한 구절대로 "지금 대한민국이 당장 망한다고 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인재를 키우고 연대해야 한다. 그래야 이 위기를 벗어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