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칼럼] 범죄자의 이익 vs 국민의 이익

입력 2025-11-09 14:10:40 수정 2025-11-09 16: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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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학부 시절부터 평생 행정학을 공부하고 가르쳐 온 필자가 어느덧 정년을 맞았다고 학과에서 정년 퇴임을 기념한 작은 기념식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때 무슨 얘길 할까 고민하다가 생각난 것이 '공익', 즉 국가, 국민, 혹은 공동체 전체에 도움이 되거나 이익을 주는 것이 무엇이고 누가, 어떻게 판단하는가 라는 주제였다. 행정학의 고전적 주제지만 현실에서의 공익은 특정 시대적 환경과 문제의 특성,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의 집단적 의사와 권력을 쥔 정치인들의 상호 작용을 통해 해석되고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그러던 차에 수년을 끌어온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약 7,800억의 부당 이득을 취한 업자들과 이를 가능하게 한 성남시 관계자들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왔고, 뜻밖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했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도 수사와 공판을 맡은 검사들은 공동체에 끼친 피해와 부당 이득의 규모에 비해 피고들의 형이 너무 가볍고 그들이 취한 부당 이득을 반환받을 수 없는 판결에 동의하지 못해 모두 항소해야 한다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외압에 의해 항소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30일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검사들이 죄가 되지 않는 사건을 억지로 기소하거나 무죄 판결이 났음에도 항소와 상고를 남발해 국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준다고 지적하면서 검찰의 항소와 상고 제도를 제한해 단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도 만들지 말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이 검사가 없는 죄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사실상 검찰의 항소권을 제한하는 단심제를 요구한 것이 말이 되는가.

단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도 없게 하라는 것은 겉으론 매우 인자한 주장이지만 실제로는 범죄자의 이익을 챙기면서 그로 인해 피해를 보거나 위협받는 공동체의 이익, 즉 공익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무지한 생각이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실수나 오판은 언제든 나올 수 있다. 3심제는 판단의 오류를 시정할 기회를 보장해 범죄자든 공동체든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대통령의 지시는 1심의 범죄자에게 이로운 판결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거나 오류가 있어도 범죄자들의 이익에 유리하게 판단하라는 것이 형사소송법의 대 원칙이라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 반면, 피고에게 불리한 내용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피고만 항소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범죄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공동체의 이익을 희생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1심에서 잘못 판단했다 하더라도 항소심에서는 범죄자에게 불리한 진실을 더 이상 밝힐 수 없게 되어 공동체의 피해 회복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바뀐 제도의 첫 번째 혜택을 받은 사례가 바로 이 대통령이 피의자이면서도 재판이 중지된 대장동 사건이다.

범죄 피의자가 공직에 진출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사회의 상식이었다. 상식이었기에 굳이 법으로 규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오직 최종 유죄 판결이 공직선거 개시 전에 나온 경우만 제한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그 상식을 무너뜨렸다. 더 나아가 압도적 의석을 가진 민주당은 차제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의 재판 중지나 공소 취하를 법제화하거나, 이 대통령의 행위를 범죄로 만든 배임죄를 개정해 아예 공소권을 없애려고 한다.

이 대통령과 대장동 사건의 1심 판결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막은 관련자들은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줄였다고 좋아할 것이다. 민주당도 집권 기간 내에 이재명 대통령과 관련된 형사 재판을 모두 없애려고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부처 이름까지 바꿔가며 눈엣가시였던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제거한 민주당이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지금으로선 무너진 상식을 바로 세우고 법치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깨어 있는 국민의 현명한 판단 외에는 방법이 없다. 앞으로의 선거에서 유권자의 살아 있는 판단만이 공익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 다음 정부에서 지금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 있는 그 자리에 이 대통령과 그 정부에서 권력을 행사한 사람들이 서게 될 줄 누가 알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