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창-이정식] 초고령사회 산업 안전과 계속고용: 통합적 접근의 필요성

입력 2025-11-06 11:41:47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장관

2025년, 우리나라는 65세 인구 비율이 20.3%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선진국이 수십 년 걸린 과정을 우리는 25년 만에 겪었다. 준비되지 않은 초고령사회는 재앙이며, 특히 산업 안전에서 그러하다. 고용노동부 통계(2023년)에 따르면 산재 사망자 중 60세 이상 고령 노동자 비율(32.7%)은 이들의 고용 비율(18.2%)을 크게 상회한다.

다수의 고령 노동자는 노후 준비 없이 생계를 위해 불안정하고 위험한 일자리로 내몰린다. OECD 통계상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40.4%로 회원국 중 1위이며, 노인 자살률 역시 OECD 평균의 3배다. 게다가 고령 노동자는 쉽게 다치고 회복은 더디다.

고령 노동자의 산업 안전 문제는 개인의 부주의나 신체적 특성으로 치부되지만, 실제로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다. 산재 사망사고는 대부분 소규모 건설현장과 폐기물 처리업 등 안전 관리가 미흡한 3D(dangerous,difficult,dirty)업종에서 발생한다. 고령 노동자는 주된 일자리에서 조기 퇴출된 후 생계를 위해 '가교일자리(bridge job)'에 불안정하게 머문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이유로 중고령자를 조기 퇴출하거나 신규 채용을 기피하면서, 이들은 더 위험한 법의 사각지대로 밀려나는 악순환이 심화된다. 따라서 주된 일자리에서 계속 일할 수 있게 하는 대책이 핵심적인 산업 안전 대책이다.

어떻게 조기 퇴출의 원인을 제거할 것인가. 근원적 문제는 과거 고도성장기에 마련된 고용 관행과 이를 뒷받침하는 낡은 법제도에 있다. 과거 노동자들은 취약한 사회안전망 속에서 낮은 초임을 받아들이고, 나이가 들면 인상되는 연공서열형 임금과 종신 고용, 퇴직금 시스템을 신뢰했다. IMF 이후 이 신뢰는 깨졌고,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세계화와 글로벌 경쟁 격화, 인구구조 변화 때문이다.

기업 테두리 내에서 기업의존적 노동시장이 형성되어, 노동자들이 기업 밖으로 나가는 것은 그간 형성된 숙련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자기부정이자 힘든 새 시작을 의미했다.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등 노동시장 유연화와 구조조정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이유다.

게다가 법제도와 관행은 제대로 개선되지 않고 우회와 편법으로 일관하여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이중구조를 심화시켰다. 세계 각국은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경쟁력을 높이고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노동개혁을 추진했다. 차이는 있지만 그 방향은 공정·유연·안정성의 균형이고, 경제주체 간 사회적 대화와 타협이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였다.

노동시장의 대표적 변수는 임금·시간·고용이다. 임금은 노동자 생활의 원천이자 기업의 비용이다. 임금결정에는 공정성, 생활보장성, 생산성 원칙이 중요하다. 임금체계 개혁의 방향은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하에 직무와 성과, 역량에 따라 보상해야 공정하고 지속가능하다는 것이다. 임금과 생산성이 연동되므로 노동비용이 늘지 않아 기업이 노동자를 나이 때문에 내보낼 이유가 없다.

중대 재해의 획기적 감축을 위해서는 효과적인 예방과 지원책이 필요하다.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며, 정책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산업안전보건 대책은 능력개발과 연령관리를 포함한 인적자원관리(HR), 참여협력적 고용노동관계(IR) 등을 고려한 종합적 대책과 정책조합(policy mix)을 할 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열악한 상황에서 재해에 취약한 중고령 노동자에게 재해가 집중되는 현황을 볼 때, 노동 조건과 작업 환경을 '편리·안전·스마트(easy,safe,smart)'하게 만드는 것 못지않게, 일자리에서 능력을 개발하며 안정적으로 계속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노동안전 종합 대책에 이어 정년연장이 논의되고 있다. 다른 나라 사례처럼 다양한 선택지를 포함한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계속고용제도 '종합대책'을 사회적 대화와 공감대를 통해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