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정두나] 꼼수 유통 막는 온누리상품권 디자인

입력 2025-10-26 14:35:13 수정 2025-10-26 16:59:59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정두나 기자
정두나 기자

범죄 예방 도시 디자인(셉테드·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은 환경이 범죄 욕구를 자극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가로등이나 CCTV 하나 없는 어두운 골목에서는 범죄가 잦을 수밖에 없다. 이에 지자체들은 처벌 수위를 높이는 대신, 거리 곳곳을 밝히고 CCTV를 설치해 범죄가 발생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온누리상품권 제도에는 아직 그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다. 법의 사각지대를 비출 가로등이 없다 보니, 누구나 나쁜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됐다.

시장 내 점포를 창고처럼 쓰면서 상품권 거래 자격만 얻고, 실제 영업은 다른 곳에서 한다는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문제의 점포는 여전히 창고로 쓰이고 있었고, 점포를 지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으로 등록된 노점 수가 실제로 시장 안에서 영업하는 노점보다 훨씬 많기도 했다. 대구 팔달신시장의 경우,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으로 등록된 노점은 143곳이지만 실제 영업 중인 곳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나머지 100여 곳은 어디서 얼마나 많은 상품권을 거래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정부가 가만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소상공인 보호와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거래 구역을 제한해 대형마트나 백화점,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는 유통할 수 없도록 했다. 소매시장이 아닌 곳에서 대량 유통될 경우, 불법 이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서다.

하지만 꼼수를 막을 환경은 끝내 마련되지 않았다. 거래 제한 구역에서 상품권을 사용하더라도 가맹 자격을 말소하거나, 상품권 악용으로 처벌할 근거가 없다. 결국 경찰은 '처벌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피해는 고스란히 다른 소상공인들이 떠안게 됐다. 처벌 규정이 없다는 소식에 상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증거를 모았다. '고발인' 자격으로는 불송치 결정 이의신청서를 낼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신청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동료 상인들이 부정 거래의 가장 큰 피해자임에도, 왜 재차 수사를 요청할 수 없냐"며 답답한 가슴만 치고 있다.

늦게나마 제도 개선 움직임이 시작됐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정 구역 외 거래 시 가맹 자격을 말소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 중이다. 이르면 올해 내에 관련 법이 신설될 가능성이 있다. 뒤늦게라도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를 '디자인'하고 있는 셈이다.

아쉽게도 현실성은 없어 보인다. 지류 상품권의 경우 거래 장소가 기록되지 않아 실제 거래가 어디서 이루어졌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점포 정보나 연락처를 공개하지 않는 노점도 많아, 일반 소비자가 신고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시장 상인들끼리 서로를 감시하듯 지켜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셉테드는 '무조건적인 처벌'이 아니라 '환경 설계'를 강조한다. 감시보다 투명함을, 단속보다 제도 개선을 앞세워 범죄를 막아야 한다는 메시지다. 온누리상품권 제도 역시 보여 주기식 처벌보다 유통 환경의 혁신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상품권을 대량 환전해 주던 관행을 멈추고, 유통 과정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소비자는 더 싸게 사고, 소상공인은 더 많이 팔 수 있게 하려던 본래의 취지는 각종 의혹 속에 가려졌다. '온누리상품권 환영'. 문구를 보고 있는 소비자의 마음도 편치 않다. 누구나 안심하고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는 '밝은 시장'을 디자인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