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목의 철학이야기]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

입력 2025-12-18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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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꽃의 조국은 들판이고, 언덕이고, 끝없는 대지이다. 꽃은 그냥 그 자체로, 그렇게 있어서 더 아름다운 것이다. 그 자리에서 자기 모습대로 피어난다. 꽃이 아름다운 건 국적 때문이 아니다. 금계국, 개망초, 코스모스, 벌노랑이…, 노을 밑으로 아름답던 한해의 들판을 나는 기억한다. 꽃 색깔과 향기에 국기가 펄럭인다면 더 이상 나는 그 꽃을 쳐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낯익은-낯선, 같은-다른 것들의 어울림과 연결로 들판은 아름답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동요 <꽃밭에서>의 노랫말이다. 이 속에 나오는 채송화, 봉숭아, 나팔꽃은 우리 주변 어디서나 친숙하게 만나는 꽃들이다. 우리는 잊고 살지만, 채송화는 남미의 브라질에서, 나팔꽃은 인도에서, 봉숭아는 동남아에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지구촌의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났으나, 우리 의식과 습속에서 마치 고유의 꽃인양 어엿이 어울려 피고 진다.

오랜 우리네 전통에 이런 정신이 있다. '포함삼교'(包含三敎)와 '접화군생'(接化群生)이다. 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郞碑序)에 나온다. 화랑 '란'이 죽자 그를 위해서 써준 비문의 '서'이다. 본문은 사라지고 이것만 남았다. 포함삼교의 '포'는 어울림(포용)을, 접화군생의 '접'은 뭇 생명과의 상생적 접속(연결)을 의미한다. 이런 정신을 잘 읽어낸 사람이 있다. 동리의 맏형 범부 김정설이다. 그는『화랑외사』에서 백결선생의 면모를 스토리텔링 했다. 그 대략은 이렇다.

백결선생의 생활은 음악을 좋아하며 지내는 나날이었다. 그러나 날씨가 좋을 땐 문을 쳐 닫고 앉아 거문고를 타는 일이 거의 없었다. 가끔 큼직한 망태를 메고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면서 꽃씨를 따 모아 너른 들판이나 산자락에다 뿌리곤 하였다. 그는 이 일에 음악 이상으로 재미 붙였다. 혹여 누가 "그게 무슨 취미냐?"라고 물으면 "이게 치국・평천하야"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수백 리를 멀다 않고 꽃씨를 뿌리러 다녔다. 하여, 망태를 메고 그가 지나다닌 곳마다 온갖 꽃들이 만발했다. 나무나 꽃 없는 산, 그중에도 벌거숭이 산을 볼 때면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사람을 발가벗겨두면 나라님이 걱정하듯 산을 벌거숭이로 두면 산신님이 화를 낸다고 했다.

꽃씨를 진 백결선생의 '망태'는 유불도라는 서로 다른 장르[三敎]를 껴안는 큰 그릇의 사유 형식[包含]이다. 이런 큰 그릇에는 뭇 생명[群生]에 접속해서 화육하는[接化] 정신을 담고 있다. 내 편 네 편 가리면서 생명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포용・포섭하는 개념 틀이다. 여기엔 일국주의나 일민족주의를 넘어, 상호문화(Intercultural) 사회를 만드는 어울림의 풍류가 넘실댄다. 세상의 다양한 '꽃=생명'을 가꾸는 소울(soul)이 충만하다.

나는 지리산 쌍계사의 <진감선사대공탑비문> 앞머리에 최치원이 쓴 한 구절을 무척 좋아한다. "대저 도는 사람으로부터 멀지 않고, 사람에겐 다른 나라란 없다(夫道不遠人, 人無異國).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유학자도, 불학자도 되었던 건 필연적이라(所以東人之子, 爲儒爲釋, 必也), 인도 등지의 서쪽으로 큰 바다를 건너가 이중 삼중 통역하면서라도 배움에 종사했던 것이다(西浮大洋, 重譯從學)." 맨날 바깥 것만 수입해서 자랑질 말고, 이런 멋진 정신머리를 살려갈 필요가 있다. 가슴이 찡한, 코즈모폴리턴 정신의 멋 스런 구절 아닌가.

모든 생명이 다 함께해야 한다는 '다살이'를 말한 사람도 있다. 이런 생각의 소유자는 대개 '중도'를 표방한다. 다 함께 살자는데, 무슨 좌・우가 있겠는가. '운명을 함께하는 새'라는'공명지조'(共命之鳥)처럼, 생명은 특별히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다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다. 어느 한쪽만 살아남자는 외골수의 이념은 단연코 거부해야 한다. 내 편만 빼고 모조리 청산해야 한다는 제노사이드 식의 극단적 인지 편향은 사라져야 한다.

인간 세상은 진흙탕물과 같다. 여기서 빈부귀천・남녀노소, 인간도 동물도 철새도 억새도 얽히고설켜서 살아간다. 어느 정부도 '포함삼교・접화군생'의 국민 통합을 제시하지 못했다. 일찍이 분황 원효는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 중생들을 풍요롭고 이익되게 해야 한다는 '귀일심원이요익중생'(歸一心源而饒益衆生)을, 퇴계 이황은 '구인(救人)·구물(救物)', '활인(活人)・활물(活物)'을, 해월 최시형은 '경물'(敬物)을, 증산 강일순은 '해원상생'(解冤相生)을, 경주 최부자는 '공생'을 말했다. 그 원류는 역시 『삼국유사』등에 나오는,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이라 본다.

이젠 대한민국도 먹고살 만한 나라가 됐다. 다른 어려운 나라를 위해 베풀며 함께 지구 살림살이를 고려할 때를 맞았다. 홍익인간은 '세계'를 대상으로 하지 대한민국 만을 챙기는 것이 아니다. 최근 아프리카 등지의 빈곤퇴치로 삶의 질을 높이려는 새마을운동이 부각 되고 있다. 각종 이념적 논란을 넘어, 홍익인간이라는 관점에서 재평가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