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9월 '생활에 플러스(+)가 된다'는 뜻의 이름을 달고 등장한 종합 유통업체 홈플러스. 홈플러스는 당시 삼성그룹이 계열사던 신세계를 독립시킨 뒤 삼성물산을 통해 유통업에 새로 진출하면서 출범했다. 홈플러스 대구점 개점을 시작으로 덩치를 키워 현재는 전국 120여개 점포를 보유한 대형마트 업계 2위 회사로 자리 잡았다. 1호점인 대구점이 대구 북구 칠성동 옛 제일모직 대구공장 터에서 지난 2021년 12월까지 24년간 운영된 만큼 대구와도 인연이 깊은 회사라 할 수 있다.
그런 홈플러스가 전에 없던 위기를 맞았다. 홈플러스는 지난 3월 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쉽게 말하면 빚을 갚기 어려우니 파산하지 않고 사업을 지속하도록 개입해 달라는 요청을 보낸 것이다. 홈플러스는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하면서 "최근 신용등급이 낮아져 자금 관련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단기자금 상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회생절차를 신청하게 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용평가사들은 지난 2월 이익 창출력 약화와 현금 창출력에 비해 과중한 재무 부담 등을 이유로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하향 조정했다.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는 위기 상황을 불러온 원인으로 대주주 MBK파트너스를 지목했다. 2015년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홈플러스를 인수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금융 비용을 홈플러스가 떠안게 되면서 경영 상태가 극도로 열악해졌다는 주장이다.
기업 인수에 투자한 자금 회수를 위한 구조조정 압박과 재무 건전성 악화는 대부분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 사례에서 공통으로 불거지는 문제다. 본질적으로 사모펀드를 만들고 운영하는 목적이 펀드에 참여하는 투자자의 수익인 만큼 기업을 경영할 때도 장기적인 기업 경쟁력 강화보다 단기적인 수익 극대화를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기업을 키우는 것보다 쉽고 빠르게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투자 축소, 인력 감축 등을 통한 '지출 줄이기'를 택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적인 산업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해 방만하게 경영하는 사례가 반복되면 힘을 잃고 축소되거나 사라지는 회사가 늘어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사모펀드의 '기업 쇼핑'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이유다.
사모펀드 규제에 대한 논의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모펀드가 과도한 차입으로 인수기업 부실을 야기한다고 보고, 지난 6월 사모펀드의 차입한도 축소 등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위원장 후보자 신분이던 지난 8월 "사모펀드의 일부 행태는 시장과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제도 개선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운영에 역기능만 있는 건 아니다. 일시적 경영 악화로 매물로 나온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 다시 일어설 기회를 제공하거나 성장 가능성이 있는 중소기업을 발굴·육성하고, 합리적인 체질 개선으로 경영을 효율화할 수도 있다. '책임 있는 투자'를 유도하는 제도적 보완은 이를 위한 필수 과제다. 기업과 노동자, 산업 생태계의 안정성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제2의 홈플러스 사태'가 일어나는 건 시간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