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우 사회2부 기자
[취재현장-신동우] 철과 AI
신동우 사회2부 기자
1968년, 허허벌판이던 포항 영일만 해안에 '포항종합제철'이 세워질 때만 해도 세상은 의심으로 가득했다. 당시 한국은 여전히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고, 산업구조 역시 겨우 섬유를 생산하거나 외국 부품을 재조립하는 경공업 수준에 머물렀다.
건설용 철근과 산업용 철판 대부분을 일본과 미국 등에서 수입해야 했기에,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계획에 있어 제철소 건설은 그야말로 절실한 과제였다.
당시 한국의 도전에 해외의 반응은 당연히 냉담했다. 미국 수출입은행을 비롯해 세계 은행들은 회의적 시선을 보내며 모두 차관을 거부할 정도였다. 불가능에 도전한 한 세대의 땀과 의지는 포항을 넘어 한국 산업화의 심장을 뜨겁게 달궜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첫 쇳물이 흘러나온 그날, 한국은 철강을 수입하던 나라에서 생산하는 나라로 거듭났고, 철강은 곧 조선·자동차·기계·전자 산업으로 이어지는 성장의 토대가 됐다.
그로부터 반세기, 포항은 또 한 번 산업사의 분기점에 서 있다. 이번에는 '철'이 아니라 'AI(인공지능)'이다. OpenAI·삼성 데이터센터가 포항에 들어선다는 소식은, 포항제철소 건설이 던졌던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떻게 다음 산업혁명을 준비할 것인가. 데이터센터 유치는 단순히 첨단 기업 한 곳의 투자 소식으로 그치지 않는다. 포항의 산업 구조를 '제조 중심'에서 '디지털 제조'로 전환하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과거 포스코가 철을 녹여 한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면, 이제 포항은 데이터를 녹여 미래 산업의 원료로 삼으려 한다. 이는 도시의 정체성과 산업 DNA가 시대에 맞게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포항은 이미 탄탄한 산업 기반과 연구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포스텍(포항공과대학)과 포항가속기연구소, 그리고 배터리·소재 산업단지 등은 데이터 기반의 첨단 산업과 융합될 수 있는 토대이다.
과거 포스코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공장'이었다면, 이제 데이터센터는 '현실과 가상을 잇는 공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기대만큼 해결해야 할 과제도 분명하다.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과 냉각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탄소 감축과 친환경 운영을 위한 새로운 기술적 해법이 요구된다. 포항이 '그린 데이터 허브'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포스코의 탄소중립 철강 기술과 같은 산업 간 연계 전략 병행도 필수이다.
포스코는 이미 철강 생산 전 과정에 AI 적용을 추진 중이다. 포스코DX가 개발한 '포스마스터' 시스템은 AI·제어 기술·자동화 등을 결합한 범용 스마트팩토리 플랫폼이다.
만약 포스코가 이번 AI 데이터센터 사업에 일정 역할로 참여하거나 인프라 사용자가 된다면, 연산 자원 확보와 고성능 AI 학습 등을 통해 공정 최적화, 품질 예측, 리스크 관리 등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앞서 설명했던 포스텍과 포항가속기연구소, 배터리 등 신소재 산업단지 모두 포스코가 만들었거나 그 덕분에 주어진 것들이다. 포스코와 포항의 역사는 이번 데이터센터가 지역 경제에 실질적으로 어떤 혜택을 줄 것인가, 일자리와 기술 이전의 효과가 지역에 어떻게 확산될 것인가에 대한 설계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포항은 산업의 흥망을 모두 겪고 있는 도시이다. 철강의 전성기와 쇠퇴, 지진의 상처와 재건 노력, 2차전지 등 신산업의 도전까지 포항의 역사는 늘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품어왔다. 반세기 전 포항의 용광로가 대한민국 산업화를 달궜다면, 이제 데이터센터의 서버 랙(네트워크 장비)이 디지털 대한민국의 엔진이 될 것이라 꿈꾼다.
포스코가 '불가능한 나라의 가능성'을 증명했듯, 포항은 또 한 번 새로운 시대의 심장으로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