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초대석-이정훈]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입력 2025-10-13 16:40:32 수정 2025-10-13 1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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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이정훈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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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실용 외교를 내세웠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신냉전이 치열한 지금 미·중과 미·북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는 것으로 이해됐기 때문이다. 실패한 문재인 정권의 '한반도 운전자론'을 왜 부활시키려 하는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피스 메이커를 하라고 하며 자신은 페이스 메이커가 되겠다고 했을 때도 가슴이 서늘했다. 피스 메이커나 페이스 메이커는 국제정치를 쥐락펴락해야 할 수 있는데, 이는 패권국이란 미국도 맘대로 하지 못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미국도 상황을 이용해 반전을 도모한다. 트럼프는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이란을 충분히 공략하자 이란 핵시설을 파괴하고 가자전쟁 휴전을 주선했다.

물론 계획일 수는 있다. 그러나 현실성은 있어야 한다. 계획을 짜는 이들은 마이크 타이슨이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이라고 한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선로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에 김정은이 중국의 리창과 러시아의 메드베데프를 거느리고 주석단에 설 것으로 봤는데, 빗나갔다. 메드베데프를 밀어내고 또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김정은 왼쪽에 선 것이다. 이를 북한 공산당(조선로동당)의 행사이니 '우정 방문'한 베트남 공산당 1인자를 우대한 것으로만 보아 넘길 순 없다. 북한 언론은 그가 '국가방문(국빈방문의 북한식 표현)'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을 만나기 전 트럼프는 SNS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숙청 또는 혁명같이 보인다'라고 쓴 적이 있는데, 이는 이재명 정부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증거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취임 직후 이 대통령은 여러 나라에 새 정부 출범을 알리는 특사단을 보내고, 한미 정상회담 성사에 진력했다. 베트남에는 박창달 전 의원을 대표로 한 특사단을 파견했다.

베트남에게 대한민국은 특별한 존재다.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가장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세 번째로 많이 교역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중부의 관광지 다낭은 '경기도 다낭'으로 불릴 정도로 많은 한국인이 찾고 있다. 그래서일까? 8월 10일부터 13일 사이 우리의 초청으로 또럼 서기장이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최초의 외빈'으로 국빈방문해 주었다. 이 대통령은 최태원, 정의선, 구광모, 신동빈 등 재벌 대표와 박항서, 안재욱 등 명망가를 불러 만찬을 베풀었다.

개발도상국인 베트남은 절대적으로 에너지가 부족하다. 때문에 대한민국 원전에 눈독을 들여왔다. 우리도 이를 알고 원자력연구원이 베트남 유망주를 교육시키는 등 도움을 줘왔다. 한·베 정상회담에서도 원자력 분야의 양해 각서가 교환됐다. 그러나 원전은 전략물자이기에 이를 제공하는 데는 국제정치가 개입한다. 체코 원전 수출 때처럼 우리를 체크하는 미국이 공산국가인 베트남에 원전을 주는 것에 동의할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또롬 서기장이 북한 열병식에서 다탄두 ICBM으로 추정되는 화성포-20형을 유심히 살펴봤다. 베트남은 같은 공산국가인 중국은 물론이고 캄보디아 등 주변국과 갈등하고 있다. 부국강병은 베트남에도 꿈일 수밖에 없으니, 그는 대한민국 원전과 북한 핵무기를 모두 갖고 싶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최대 투자국인 한국의 초청에 응하고 평양에도 가는 실용 외교에 나선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입맛은 씁쓸하다. 이재명 정부가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아 그렇지, 외교 관계자들은 강한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돈이 필요하면 좋게 지내고 그것이 달성되면 쉽게 돌아서는구나'란 생각을 하고 있다. 또럼이 남북관계를 이어주는 페이스 메이커를 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는 '좋은 해석'도 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방북으로 북한이 비핵화하고 우리에 대한 위협을 중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니, 이를 기대하는 것도 난망하다.

신냉전시대에 피스 메이커나 페이스 메이커, 실용 외교 개념에 잡혀 있는 것은 '방구석 여포'가 되는 길이다. 패권국이라는 미국도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77주년 국군의 날 행사를 초라하게 치를 정도로 이 대통령은 안보 당국을 경시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재명 정부는 외교·통일·국방 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