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편 살해하곤 아들에겐 "물감놀이 했어"…시신 흔적도 안남았다

입력 2025-09-27 22:44:14 수정 2025-09-28 01: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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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으로 다시 보는 그때 그사건
'전남편 살해' 고유정 무기징역 확정…의붓아들 관련 혐의는 무죄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 앞서 지난 5일 제주지방경찰청은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고씨의 얼굴, 실명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 앞서 지난 5일 제주지방경찰청은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고씨의 얼굴, 실명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고유정의 아들은 친부 A씨를 '삼촌'이라 불렀다. 고유정과 이혼한 전 남편 A씨가 아닌 현 남편인 B씨를 친부로 알고 살았다. 그렇게라도 아들을 만나게 해달라던 A씨의 간절한 요청은 2년이 지난 끝에 겨우 받아들여졌다.

2019년 5월 25일, 제주도의 한 키즈 펜션. 전처와 아들을 만난 A씨는 오랜만의 식사 자리에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들과 보내는 생의 마지막 순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CCTV 없는 펜션, 청소도구까지…철저히 준비한 만남

2019년 봄, 고유정은 전 남편 A씨와의 아들 면접교섭을 앞두고 제주도의 한 조용한 키즈 펜션을 예약했다. 오랜만에 아들과 아빠가 만나는 장소였지만, 고유정의 관심사는 'CCTV가 없는 펜션'이었다. 고유정은 이 만남을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표면적으로는 '면접교섭'이라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이면에는 전 남편을 살해하고 범행을 은닉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는 인터넷을 검색해 범행도구와 여러 개의 청소도구를 미리 구매했다.

5월 25일, 그는 아들과 전 남편을 만나 예정대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저녁 무렵 그들을 펜션으로 이끌었다. 그날 저녁, 그는 카레를 만들었다. 아이와 전 남편이 함께 먹는 저녁 식탁. 평화로운 풍경으로 보였지만 카레 속에는 수면제 일종이 녹아 있었다. 약효가 돌기 시작하면서 피해자는 점점 반응을 잃어갔고, 결국 흉기에 찔린 채 생을 마감했다.

범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시신을 욕실로 끌고 가 물을 틀어놓은 채 혈흔을 흘러나오게 했고, 미리 준비한 청소도구로 혈흔을 닦아냈다. 고유정은 아들을 놀이방에 두고 범행장면을 보지 못하게 했고, 이후 아들에게 태연히 "물감놀이 했어" "엄마 청소하고 올게"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날 아들을 친정에 맡긴 후 다시 펜션으로 돌아와 범행 도구로 시신을 절단해 들통과 박스에 나눠 담았다. 일부 시신은 제주항을 떠나는 여객선에서 바다로 던져졌다. 또 일부는 친정이 소유한 김포의 아파트에서 추가로 훼손해 쓰레기봉투에 넣어 유기했다.

그는 알리바이를 만드는 데도 공을 들였다. 피해자의 스마트폰에 "성폭행미수 및 폭력으로 고소하겠어. 니가 인간이냐? 넌 예나 지금이나 끝까지 나쁜 인간이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또 본인이 가지고 있던 피해자의 스마트폰을 임의로 조작해 "미안하게 됐다. 내정신이 아니었져 너 재혼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고 어쨌든 미안하게 됐다. 고소는 하지 말아주라. 내년에도 취업해야 되고 미안하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작성해 자신에게 보냈다.

A씨의 실종 신고를 받고 수사 중인 경찰이 전화로 출석을 요구했을 때, 고유정이 한 말은 이랬다. "나는 성폭행을 당할 뻔한 범죄 피해자다. 왜 나에게 진술을 받느냐."

◇두달 전 의붓아들 사망…그곳에도 그가 있었다

이 사건이 드러나기 전, 고유정은 이미 또 하나의 죽음을 마주했다. 2019년 3월 2일 오전 10시 13분,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에서 119에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아이가 숨을 쉬지 않아요."

B씨가 10시쯤 잠에서 깬 당시 C군의 얼굴은 요에 파묻힌 채 차갑게 굳어 있었다. B씨는 심폐소생술을 하며 고유정에게 신고를 부탁했고, 고유정은 신고 당시 C군의 나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등 당황한 모습이었다. 소방대원이 출동했을 땐 C군은 이미 숨진 상태였다.

처음에는 불행한 사고로 보였다. 그러나 두 달 뒤, 고유정이 A씨를 살해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검찰은 C군의 죽음도 고유정의 계획된 범행 중 하나였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제시한 시나리오는 이랬다. 당시 고유정은 남편 B씨에게 분노를 품고 있었고, 그의 사랑을 받던 의붓아들을 살해하려 했다는 것이다. B씨에게 수면제가 든 차를 먹였고, 잠든 남편 옆에서 아이를 질식시켜 살해했다는 주장이었다. 아이의 입과 코 주변에는 혈흔이 묻어 있었으며, 국과수는 압착성 질식 또는 자세성 질식 가능성을 언급했다. 고유정이 사건 전 B씨에게 잠버릇이 나쁘다는 점을 여러차례 언급한 것도 근거로 내세웠다.

◇의붓아들 관련 혐의, 무죄 나온 이유

법원은 전남편을 살해한 혐의 등에 대해 고유정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과 이혼한 이후 2년만에 아들을 만난 피해자는 자신을 아버지가 아니라 '삼촌'으로 알고 있는 아들과 불과 한나절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살해되었는바, 생명은 침해되는 경우 어떠한 방법으로도 회복할 수 없다"고 했다. 또 "한때 가족이었던 피고인의 손에 피해자를 잃은 유족들은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시신조차 찾지 못한 깊은 슬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의붓아들의 죽음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먼저 "B씨에게 수면제를 먹였다는 직접 증거가 없다"고 보았다. B씨 모발에서 검출된 수면제 성분만으로는 사건 당일 복용 여부를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법원은 C군의 사망 원인이 불분명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의 주장 외에 또 다른 원인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법원은 "의심은 가지만, 범죄로 단정할 증거는 없다"며 C군에 대한 살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