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하영석] 실패사례가 시사하는 HMM의 민영화 방향

입력 2025-09-30 11: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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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석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장(계명대 명예교수)

하영석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
하영석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

글로벌 컨테이너선사인 HMM(구 현대상선)의 재매각이 이슈화되고 있다. 산업은행 지분 36.02%를 확보하기 위해 8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한 초대형 거래이다. 컨테이너 운송시장은 인수합병으로 규모를 키운 상위 5개의 초대형 선사가 세계 선대의 57.9%를 점유하고 있다. 세계 8위로 3%의 점유율을 가진 HMM은 규모와 신규 발주량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통상 해운기업은 부정기선사와 정기선사로 구분한다. 부정기선사는 철광석, 석탄, 원유, LNG 등의 대량화물을 주로 운송한다. 반면에 정기선사로 불리는 컨테이너선사는 다수의 화주로부터 개별 컨테이너를 모아 정해진 항로에서 주기적인 운송서비스를 제공한다. 부산항에서 유럽까지 주 1회 서비스 제공하는 데 최소 6척의 대형 컨테이너선이 필요한 자본집약적 산업이다.

한국 컨테이너선사는 두 번의 큰 시련을 경험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은 한진해운, 현대상선, 조양상선 등 세 개의 대형 선사를 보유했다. 이 가운데 연간 1조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한 조양상선이 2001년 파산하였다. 제일생명, 한신금고 등 계열사와 자산 매각자금 7,000여억 원을 투입한 자구노력에도 회생하지 못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공히 부채비율 200%를 맞추기 위해 선박을 헐값에 매각한 후 재용선(일정 기간 선박을 빌려 사용)하여 사용하였다. 이에 더하여 현대상선은 실적이 양호한 자동차운송 부문을 15억 달러에 매각하여 재무구조를 개선하였고, 한진해운도 컨테이너선 26척 등 선박과 자산을 처분하여 부채 규모를 줄였다. 선박 매각 후 재용선의 방법은 글로벌 금융위기 시 높은 용선료 문제를 초래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로 해상운임은 하락하고 유가는 상승했다. 2011년부터 당기순이익 적자를 기록해오던 한진해운은 벌크선 부문, 항만터미널 등의 매각과 유상증자로 마련한 5.5조 원과 그룹지원금 약 2조 원을 투입해 자구책을 실행했으나, 결국 40여년의 업력을 뒤로한 채 2017년 파산하였다. 2016년 한진해운은 컨테이너선 98척, 약 61만TEU(20피트 컨테이너)를 보유한 세계 7위의 선사였다.

현대상선은 현대증권, 현대로지스틱스 등 계열사와 LNG선 부문, 항만터미널 지분 등의 매각을 통해 조성한 약 5조 원을 구조개선에 투입하였으나 정상화를 이루지 못하였다. 2016년 세계 14위로 컨테이너선 60척, 437,512TEU를 보유하고 있었던 현대상선은 컨테이너선사의 국가적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위기 극복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 결과 생존했지만 경영권은 산업은행으로 이전되었다.

같은 시기에 외국의 글로벌 선사들은 엄청난 정부의 금융 지원으로 위기를 극복하였다. 세계 1위 선사인 덴마크의 머스크는 67.2억 달러, 프랑스의 CMA CGM은 6.5억 달러와 2.8억 유로, 중국의 COSCO는 157억 달러의 금융지원을 받았다. 독일의 하팍로이드는 18억 달러의 정부지급보증과 함부르크시의 7.5억 유로 지원 외에도 지분 20.2%를 44억 유로에 시 소유의 컨소시엄에 매각하여 유동성을 확보하였다.

일본은 1%의 저리 융자를 기반으로 정기선 3사가 지분참여 형식으로 컨테이너 부문의 통합법인 ONE을 출범시켰다. CMA CGM은 2015년 싱가포르의 NOL(미국 APL 보유)을, 하팍로이드는 아랍계 대표 선사인 UASC를 인수하여 덩치를 키웠다.

비 올 때 우산을 뺏는 한국의 금융 관행과 달리 유럽은 우산을 주고 비옷을 입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한진해운의 사례는 국적 컨테이너선사의 존치 필요성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절대적 지지 없이는 해운물류에 진심이었던 대기업들도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2019년 까지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해왔던 HMM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의 물류대란으로 기록적인 수익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미국 관세정책에 따른 무역량 감소와 선박 공급과잉으로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치킨게임으로 비유되는 글로벌 선사의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포스코가 물류 효율성 제고를 위해 HMM의 인수를 고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해운산업 기반을 흔들 수 있는 대량화물 화주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국적 컨테이너선사는 국가 차원의 수출입 물류활동을 지원하는 공적 성격을 가진 기간산업이고, 경쟁 선사들은 해운·물류에 특화되었거나 국영기업이기 때문이다. HMM의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하팍로이드의 민간과 공공 자본이 혼합된 분산형 지배구조나 일본 통합법인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처리 방향을 결정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