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폐합의 후유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런데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도 솔직히 엄두가 안 납니다."
대구시 산하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통폐합 이후 3년의 상황을 이 한마디로 압축했다. 지난 2022년 민선 8기 출범 직후 대구시는 강도 높은 공공기관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시 산하 18개 기관을 11개로 줄이는 대규모 통폐합이었다. 당시 다수 기관장이 물러났고, 일부는 사퇴를 거부하며 반기를 들었다.
그는 공공기관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시대적 흐름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현실은 많이 달랐다고 말했다. 몸집은 커졌지만 기대만큼 경쟁력 강화와 성과 창출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직의 동질성이 결여되면서 내부 반목과 권력 다툼, 갈등 조정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고, 조직 피로도는 점점 쌓여 갔다는 얘기다.
지금도 기관마다 기능·인사·처우·조직 문화·노조 등 복잡한 난제들이 명쾌하게 매듭지어지지 못하고 있다. 조직의 역사성과 절차적 숙성이 배제되면서 직원들의 사기도 크게 떨어졌다. 물리적 통합이 유기적 결합을 담보하지는 못한 것이다.
통폐합 뒤 또 다른 그림자도 간과할 수 없다. 김대현 대구시의원(서구1)에 따르면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은 통폐합 직후인 2022년 1천433명이던 정원이 지난해 1천590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인건비도 683억원에서 815억원으로 불어났다. 올해 대구시 산하 출자·출연기관 전체 임직원은 1천200명을 넘어섰고, 예산은 9천억원 규모로 전년(7천362억원) 대비 확대됐다.
경영 성과에도 의문부호가 뒤따른다. 올해 경영 실적 평가에서 8개 기관 중 최고 등급을 받은 곳은 한 곳도 없었고, 기관장 평가 역시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
방만 경영과 예산 편법 집행, 인사 전횡, 조직 갈등, 기강 해이 등 구조적 문제도 더욱 선명해졌다. 대구문화예술진흥원과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에서 불거진 천만원대 위법 시간 외 근무수당 지급 논란은 직원 윤리의식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전문가들은 이번 문제를 특정 기관의 일탈로 보지 않는다. 비대해진 조직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방치가 병폐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대구시장 공백과 권한대행 체제 속에 안일주의가 심화될 우려도 나온다.
최근 김정기 시장 권한대행은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공공성과 책임성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며 특별 점검을 지시했다. 김 권한대행은 행정안전부 조직진단과장, 조직기획과장, 조직국장을 거치며 정부 부처와 대검찰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조직 개편을 경험한 '조직통'이다. 그의 경륜과 전문성으로 조직 체계를 재정비하고, 공공기관 자정 능력을 회복시키는 일은 더 미뤄 둘 수 없는 과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기관 수장들의 책임 있는 리더십이다.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그 불신은 대구 공직사회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 기관장들은 자구책을 마련해 변화를 선언하고, 시민 신뢰 회복의 출발점에 서야 한다.
내년 7월 출범하는 민선 9기는 산하 공기업과 출자·출연 기관 재편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됐다.
내부가 아닌 외부로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기관, 제대로 일하는 기관,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공공기관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지금부터라도 스스로 존재 가치를 입증하겠다는 각오로 긴장의 고삐를 좨야 할 때다. 그래야 내년 7월 어떤 변화의 바람이 몰아쳐도 그 존재 이유를 당당히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