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에 대한 고율 관세를 다시 거론하면서 국내 산업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반도체 관세 '최혜국 대우'(MFN)를 명문화하지 못한 데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업계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영국 방문을 위해 백악관을 나서면서 기자들을 만나 "반도체는 더 낼 수 있고, 의약품도 더 낼 수 있다. 이들은 이익률이 (자동차보다) 더 높다"고 말했다. 앞서 그는 반도체 관세와 관련해 100%를 거론한 바 있으며 의약품에 대해서도 150∼250%를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의 자동차 관세가 15%로 정해진 데 대한 자국 자동차 업계의 불만이 제기되자 반도체에 대한 추가 압박 카드를 꺼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상무부는 이미 철강과 같은 절차에 따라 반도체와 반도체 제조장비, 파생제품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다만 8월 중 예고됐던 발표는 계속해서 늦춰지고 있고,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에 대해 관세율 100%를 거론하며 고강도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상무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을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프로그램에서 제외하며 중국 내 반도체 장비에 대한 포괄적 허가를 취소한다고 발표했고, 이로 인해 공장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상무부는 한국 정부에 개별 단위 대신 연 단위 승인 방식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에서 전체 낸드플래시의 약 30~40%를, SK하이닉스는 우시 공장에서 D램의 약 40%를 생산하고 있는데 미국의 제재가 시작되면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밖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관세 면제를 위한 자국 내 생산시설 건설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인텔에 대한 보조금을 출자 전환해 지분을 확보하면서 미국 내 사업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분야가 관세 부담으로 가격 경쟁력에 타격을 받은 자동차 업계의 전철을 밟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미 관세 협상 후속 논의가 지연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최대 경쟁상대인 일본보다 10%포인트(p) 높은 25%의 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경우 메모리 3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이 수혜를 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외에 아직 명확한 게 없어서 답답하다"며 "현재로선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조속히 불확실성이 해소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반도체는 한국 전체 수출에서 약 25%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 품목이다. 최근 수출 단가 상승으로 8월(151억달러)에는 사상 최대 수출액을 2개월 만에 경신했다. 주력 수출품이 타격을 입을 경우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