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성과 거리가 먼 트럼프 행정부"…한미 관세 협상 교착 장기화

입력 2025-09-17 12: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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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관 산업장관 "美 무리한 요구에도 대미 협상은 이어가야"
안보·투자·통상 얽힌 난제…관세 폭탄 가능성 여전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16일 세종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16일 세종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비합리적 태도를 정면 비판하면서도, 안보와 통상 전반을 고려할 때 협상 자체를 중단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 장관은 16일 세종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협상 상황을 설명하며 "교착 국면에 있다가도 계속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협상은 본질적으로 밀고 당기는 과정"이라면서도 "미국과의 입장 차이가 워낙 크다"고 토로했다.

김 장관은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을 만나 후속 협의를 진행했지만,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전하며 "거칠게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또 "책상도 치고, 목소리가 올라가는 과정이 있었다"고 전해 협상이 단순한 기술적 조율이 아니라 치열한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그는 "인도, 스위스, 중국 사례를 보면 미국과 합의에 실패했을 때 관세가 무지막지하게 오른다"며 한국 역시 15% 수준인 상호관세율이 크게 인상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했다.

실제로 러트닉 장관은 11일 CNBC 인터뷰에서 "한국은 합의를 받아들이거나 관세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을 정면으로 압박하는 모양새다.

미국 측은 한국이 약속한 3천500억달러(약 484조원) 규모의 투자 펀드를 두고 일본과 맺은 합의와 동일한 방식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처 선정 권한을 미국이 쥐고 필요할 때마다 한국이 자금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장관은 "미국의 요구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며 구체적 협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3천500억달러 전액이 미국으로 흘러간다는 인식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예시로 한미 간 조선 산업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를 언급하며 "1천500억달러 규모 사업처럼 우리 기업에게도 기회가 되는 협력 사업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과 맺은 미·일 합의의 경우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MOU) 형태이며, 투자금 사용처는 양국 협의 후 일본이 동의하지 않으면 집행되지 않는다는 점도 거론했다. 한국 역시 이런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일부 예산을 국내 기업 지원에 쓰는 편이 낫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대해 김 장관은 "저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안보, 안전 걱정 없는 평화"와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큰 목표를 언급하며, 당장의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전략적 관점에서 대미 협상을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는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며 "말을 안 들으면 '넌 우리 편이 아니다'고 하는, 우리가 10년, 20년 전에 알던 미국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통상 문제를 안보와 직결해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드러낸 발언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