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악기는 몸에 직접 진동을 전달함으로써 즉각적인 감정 반응을 유발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중국이나 중동에서는 북과 징을 전쟁에 흔히 사용했다. 군사들의 사기(士氣)를 북돋우고 단결시켜 적군을 향해 맹렬히 돌진(突進)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언어를 악기에 비유하자면 '타악기 소리'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악수는 사람하고 하는 것"이라며 국민의힘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 '정당 해산 공세'를 이어가는 것, "검찰 개혁, 언론 개혁, 사법 개혁을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끝내겠다"는 것,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3대 특검법 개정안 합의(수사 기간을 연장하지 않기로 한 합의)를 뒤집고 재협상을 지시한 것 등이 모두 그렇다. 지난주 54분 국회 연설에서 내란을 26차례 언급한 것도 마찬가지다.
법조계와 학계가 우려하는 '내란특별재판부(內亂特別裁判部)' 설치를 밀어붙이는 것,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6명씩 같은 수로 합의했던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구성안을 파기하고 윤리특위를 민주당이 주도할 수 있도록 인적 구성을 바꾸겠다는 것, 여야가 합의한 국민의힘 추천 몫 국가인권위원 2명을 부결시켜 버린 것, "1919년 건국을 부정하는 것은 역사 내란"이라며, 극단적인 표현으로 역사를 정치 논쟁으로 삼는 것도 '타악기 소리'에 해당한다.
갑질 논란으로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직에서 사퇴한 강선우 민주당 의원을 향해 "동지란 비를 함께 맞아 주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자기편을 격동시키고 결집시키려는 '타악기 소리'에 다름 아니다. 갑질 피해자들이야 어떻게 느끼든 당심(黨心)을 자신에게 결집시키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정 대표의 격동적인 언사(言辭)는 국민의힘과 그 지지층에 대한 공격인 동시에 민주당 지지층과 중도층의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키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고 본다. 국민의힘을 '해산 대상'으로 몰아붙임으로써 '여당이 야당과 대화해야 하지 않나…'라는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타악기는 감정을 격동하고 이성을 무디게 만듦으로써 객관적 사고를 방해한다. 전장에서 타악기를 즐겨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 대표가 시종 격동적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그가 정치를 '타협과 협력을 통한 갈등 해소와 국민 삶을 개선하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갈등 조장 및 대결로 승리를 쟁취하는 수단'으로 본다는 방증(傍證)이다.
군소정당이나 야당이라면 '타악기 언어'를 써야 할 때가 더러 있다. 하지만 야당이 아닌 여당, 그것도 국회를 장악한 거대 여당 대표가 '북소리'를 고집하는 것은 정 대표 개인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는 유리할지 몰라도 국민 삶과 국가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 대표는 지난주 국회 연설에서 국민의힘을 향해 "낡은 과거의 틀을 깨고 나와 민주주의와 손을 잡아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식의 반민주적 정치를 하는 사람은 정 대표 본인이다. 창·칼만 안 들었지 국회 다수 석을 무기로 마구 찌르고 베는 '칼부림 정치'를 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그러나 어쩌면 정 대표가 '쿵쾅 쿵쾅 쿵쾅' 타악기를 고집하는 것은 조화로운 화성(和聲), 풍부한 음색(音色)을 표현하는 현악기나 건반악기, 관악기를 다룰 줄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의 거친 언사가 전략이 아니라 능력 부족 때문이라면 못마땅하지만 이해 못 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