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0억원 강화' 발표 두 달 만에 전면 선회
개인투자자 반발·주가 급락에 李대통령도 "고집 말자"
정부가 상장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을 현행 '종목당 50억원'으로 유지하기로 확정했다. 불과 두 달 전 세제개편안을 통해 10억원으로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주식시장 급락과 투자자 반발, 이재명 대통령의 공개 발언이 이어지면서 정책 기조가 전면 선회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자본시장 활성화'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적 계산과 정책 혼선이 자리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15일 관가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정부가 애초 기준을 낮추려 했던 것은 과세 형평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대주주 범위를 확대해 세금을 더 거둬들이고, 거래세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금융세제를 정비하려는 구상이었다.
실제로 대주주 기준은 이명박 정부 시절 100억원에서 출발해 박근혜 정부 15억원, 문재인 정부 10억원까지 꾸준히 낮춰졌다. '주식도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을 매긴다'는 원칙을 강화하려던 흐름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유예하면서 50억원으로 되돌렸고, 이번 정부도 이를 원점으로 유지한 셈이다.
문제는 시장의 과민한 반응이었다. 지난 7월 세제개편안 발표 직후 코스피가 4% 가까이 급락했고, 투자자들은 '연말 대주주 매물 폭탄' 가능성을 우려하며 반발했다. '개미 투자자'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의 민심이 급속도로 악화하자,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고집할 필요 없다"며 입장을 누그러뜨렸다. 세수 확보보다 표심과 시장 안정을 우선한 결정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1천만명에 달하는 개인투자자층을 자극하는 것은 정치적 리스크라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많다.
이번 결정으로 단기적으로는 연말 주가 하락 리스크가 줄어드는 효과가 기대된다. 대주주들이 양도세 회피를 위해 대량 매도에 나설 가능성이 차단되면서, 시장 변동성을 줄이고 투자 심리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여기에 더해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조성과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도입 등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결정에 정치적 함의도 적지 않다. 이 대통령은 "금융을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해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는 비전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당장 민심을 달래는 선택일 뿐, 장기적인 세제 개혁의 동력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여권 지지층에서는 '부자 감세'라는 프레임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복지 확충과 재정 확대를 뒷받침할 세입 기반이 흔들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야의 인식 차이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는 점도 일부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50억원 기준 유지를 주장해왔고, 정부가 이를 사실상 수용했다. 심지어 야당인 국민의힘은 이달 초 대주주 기준을 오히려 100억원으로 완화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 대통령령 규정을 법률로 격상시켜 규제 불확실성을 줄이자는 논리다.
국민의힘은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10억원 기준이 적용되던 4년간 연평균 4조원이 넘는 순매도가 발생했지만, 50억원으로 완화된 지난해에는 순매수로 전환됐다는 한국거래소 자료를 근거로 시장 왜곡 가능성을 부각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정부가 앞에서는 코스피 5천을 외치면서 뒤로는 주식시장을 뒤흔드는 오락가락 행보를 하고 있다"며 "진짜 밸류업 정책을 법제화해 투자자 보호에 앞장서겠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