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2025 경주 APEC, 회의 이후가 더 중요하다

입력 2025-10-08 14: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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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찬 동국대 WISE캠퍼스 교수
이영찬 동국대 WISE캠퍼스 교수

국제 행사는 흔히 축제처럼 여겨진다. 정상들이 방문하고, 언론은 화려한 장면을 비추며 개최 도시는 며칠간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는 그 순간이 아니라, 행사가 끝난 뒤 그 도시가 어떤 미래를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2025년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도 예외는 아니다.

2005년 부산 APEC이 도시 브랜드와 관광산업 도약의 계기가 되었듯, 경주에게도 이번 기회는 크다. 그러나 20년 전의 모델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세계 질서와 국제협력 환경은 이미 크게 변했다. 지금은 경제를 넘어 문화, 창의성, 지역성, 연결성이 결합된 새로운 국제협력 모델이 필요하다. 경주 APEC의 성패는 이 도시가 지닌 천년 역사문화 자산과 지역 정체성을 얼마나 전략적으로 미래 성장동력과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경상북도와 경주시는 올해 6월 'K-MISO CITY' 프로젝트를 선포했다. 즉 혁신적·스마트·개방적인 도시를 시민이 함께 만든다는 비전이다. 이는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라 생활 속 친절·질서·청결은 물론 스마트 기술과 다국어 서비스 확충까지 포괄한다. 특히 1천명 규모의 'APEC 범시도민지원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시민 참여형 50개 세부사업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필자는 '2025 경주 APEC 시민대학' 강의에서 시민들이 행사 자체보다 이후 경주의 변화에 더 큰 기대를 품고 있음을 확인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단순 환대를 넘어, 지속 가능한 시민 역량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 K-MISO CITY가 세계시민교육과 결합돼 APEC 이후에도 도시 품격을 높이는 상시 프로그램으로 발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APEC 이후를 대비한 핵심 전략으로 '경주 세계역사문화포럼(경주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목표는 문화·창의산업과 평화·포용 의제를 다루는 '문화 분야의 다보스포럼'이다.

로드맵은 세 단계로 구성된다. 2025~2026년 창립총회와 정책선언, 문화산업 투자 컨퍼런스를 시작으로, 2027~2029년에는 연례화와 세계역사문화도시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2029년 이후에는 정상급 회의(세계역사문화경제정상회의)로 격상한다는 계획이다. 경주포럼이 매년 개최된다면 APEC 논의 성과를 포스트 APEC 협력 플랫폼으로 제도화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

경북도는 경주포럼을 중심축으로 후속사업을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다. 주요 사업은 APEC 기념공원·문화의 전당, 보문관광단지 대규모 리노베이션, 신라역사문화 대공원, 글로벌 AI 표준센터, 문화·관광 디지털 인프라 구축 등이다. 이러한 대규모 프로젝트는 중앙정부, 국제기구, 민간이 참여하는 다층 거버넌스 속에서만 실현 가능하다.

결국 APEC 정상회의 이후 경주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시민의 주인의식과 참여다. 관(官) 주도의 계획은 틀을 제공할 뿐, 지속가능성은 시민이 만든다. 준비 과정에서 형성된 참여문화와 공동체 역량이야말로 APEC이 남길 가장 큰 유산이다.

2025년 가을, 경주 APEC은 단순한 외교 행사가 아니라 '세계 속의 경주'라는 비전을 실현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 시민이 함께 문화외교·시민참여·지역혁신을 이어간다면, 경주에서 타오른 협력의 불씨는 아시아·태평양의 지속 가능한 내일을 오래도록 밝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