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농촌, 바닥 드러낸 저수지…타들어가는 농심(農心)

입력 2025-09-10 15:35:14 수정 2025-09-10 21: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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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없고 장맛비 턱없이 부족…전국 65%·강원 56%보다 낮아
가뭄에 농업용수 공급 불투명…긴급 급수·간이양수장 등 절실

9일 대구 군위군 소보면 산호저수지가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곳 저수지의 저수율은 16.9%로 평년 72.6%에 비해 한참 못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9일 대구 군위군 소보면 산호저수지가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곳 저수지의 저수율은 16.9%로 평년 72.6%에 비해 한참 못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밭에 겨우 물을 대고 있지만 언제 끊길지 몰라 속이 타들어갑니다. 추석이 다가오는데 수확은커녕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까 밤잠도 설치고 있습니다."

경북 문경시 동로면에서 농사를 짓는 권모(55)씨는 바짝 마른 밭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의 주변에 자리한 경천저수지는 만수 시 2만7천200t을 담을 수 있지만, 9월 10일 기준 실제 저수량은 5천902t에 불과하다. 저수율 21.7%로 평년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심각' 단계다.

◆전국 평균보다 훨씬 낮은 저수율
올해는 태풍 한 번 제대로 오지 않았고 장맛비마저 제 몫을 하지 못했다. 갈라진 대지와 메마른 논밭은 가뭄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전국 3천424개 농업용 저수지 평균 저수율은 65.9%다. 이 중 가뭄재난 조치가 필요한 곳은 660개소에 이른다.

그러나 경북은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도내 692개 저수지 평균 저수율은 49.8%로 강원도(56.5%)보다도 낮아 전국 최저치를 기록했다. 평년 대비 73% 수준으로, 절반 이상이 사실상 고갈 상태에 놓였다. 이 가운데 32개 저수지는 '심각' 단계로 분류됐다. 농민들 사이에서는 "올해만이 아니라 내년 농사도 장담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저수율 20%도 못 채운 곳 속출
경북의 위기는 구체적인 수치에서도 드러난다. 저수율이 20% 이하인 저수지가 14곳에 달하며, 이 중 13곳은 '심각' 단계다. 영덕 봉산(13.7%), 청송 청운(15.0%), 구미 옥관(15.4%), 울진 삼율(17.5%), 경주 왕신(20.0%) 등이 대표적이다.

농어촌공사는 저수율에 따라 ▷관심(60~70%) ▷주의(50~60%) ▷경계(40~50%) ▷심각(40% 이하) 단계로 나누고, 평년대비에 따라 ▷주의(50~60%) ▷경계(40~50%) ▷심각(40% 이하) 등의 가뭄 단계가 있다.

안동지사가 관리하는 23개 저수지 중에서도 만운, 신양, 위동, 단호 등 4곳이 저수율 40%를 밑돌며 위기 상황에 놓였다. 특히 가장 큰 규모의 만운저수지는 25.8%에 불과하다. 내년에 확장공사가 예정된 단호저수지 역시 올해 가뭄을 버티기엔 역부족이다.

현장을 지키는 직원들은 밤낮없는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안동지사 관계자는 "지금은 한 방울의 물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대로라면 내년 농업용수 공급조차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대형 댐은 '버팀목', 농촌은 이미 재난
안동댐과 임하댐의 상황은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두 댐의 합산 저수율은 예년의 85% 수준으로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는 "내년 홍수기 전까지는 운영이 가능해 당장 심각한 위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광역급수는 버텨도 농촌 저수지의 고갈은 농가에 직접적인 피해를 안기고 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안동·임하댐의 합산 저수량은 8억5천만t으로 예년 대비 85% 수준에 머물렀다. 영남권 16개 시·군 480만 명의 식수원 역할을 하고 있지만, 물 부족 심화로 하천 유지용수와 농업용수 공급량이 이미 줄고 있다.

◆비 예보에도 뿌리 깊은 갈증
기상청은 9일부터 12일까지 전남·경남·제주에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 했지만, 경북 북부에는 5~20㎜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단기성 호우로는 이미 바닥난 저수지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댐 중심의 대책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지역의 한 환경공학 전문가는 "대형 댐은 광역 용수 공급망을 조절할 수 있지만, 농업용 저수지는 농민 생계와 직결된다"며 "단기적으로는 긴급 급수 지원과 양수장 가동이 필요하고, 장기적으로는 저수지 보강과 관리 체계 전면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추석 앞둔 농민들의 절망
농촌 현장은 이미 초비상이다. 논밭마다 생기를 잃고, 가을 수확을 앞둔 농민들은 연일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이 같은 위기는 정치권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최근 강릉을 찾아 피해 현장을 점검하며 대책 마련을 논의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간사 정희용 의원은 "비단 강릉뿐 아니라 전국 어디서나 가뭄 피해가 확산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간이양수장 설치, 저수지 물 채우기, 직접급수와 지하수 임시관정 설치 등 용수 확보 대책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