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석 안전보건공단 대구본부 산업안전부장
흥미로운 실험 하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모집한다. 여러 방에 1명에서 10명까지 다양하게 인원을 구성해 대기시킨다. 이때 방 문틈으로 갑자기 연기가 새어 들어온다. 연기를 본 사람들은 방을 뛰쳐나간다.
혼자 대기하던 사람의 75%는 2분 이내에 위험을 감지하고 방을 뛰쳐나왔다. 하지만 대기 인원이 많을수록, 방에서 나오는 시간이 길어졌다. 10명이 모여 있던 방에서는 모두 대피하는데 평균 6분이나 걸렸다고 한다.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있어서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는 심리학자 달리와 라테인이 1969년에 실시한 실험이다. 실험 결과에서 나타난 것처럼, 사람들은 다수가 있을 때 오히려 책임감이 분산돼 잘 나서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라 한다.
방관자 효과는 우리 일상에서도 접할 수 있다. 길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으면 서로 눈치를 본다. 되레 구조가 늦어진다. 누군가 혼자 발견하는 게 오히려 구조가 빠른 경우가 나온다.
산업 현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산업 현장의 사고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 이미 여러 차례의 위험 징후가 포착된다. 문제는 그 징후를 보고도 방치하는 것이다. 대형 사고는 이 같은 방심에서 비롯된다.
지난달 19일 2명의 사망자와 5명의 부상자를 낸 경북 청도역 인근 경부선 철도 사고를 돌아보자.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지만, 기존의 선로주변 시설물 점검 방법과 사고 당시 상황의 차이점은 먼저 살펴볼 가치가 있다.
종전에도 폭우 대비 비탈면 붕괴 위험 점검 작업은 열차 운행 중에 진행됐다고 한다. 대신 열차가 접근해 오면 경보장치가 울렸다. 기관사도 경적으로 주의를 전했다. 열차 감시자도 지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점검 장소를 가기 위해 선로 옆을 따라 일렬로 나란히 걷던 7명이 한꺼번에 열차에 치였다. 열차 운행 통제와 현장 신호 체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선로 밖 관제센터 직원, 기관사 그리고 선로에 진입한 7명 중 한 사람만이라도 이 문제를 미리 알았더라면 대규모 인명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일터에서 방관자 효과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위험요인을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사고를 줄일 수 있다. 사소하다고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위험을 볼 줄 아는 눈을 키우고,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안전은 책임이자 스스로를 지키는 권리다. 위험을 인식했을 때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가 많아질수록 우리 일터는 더 안전해진다.
또 안전은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지를 보여주는 척도다. 우리가 방관자가 되지 않을 때 우리 일상과 일터의 위험은 줄어들고, 사회는 건강해진다.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고, 위험요소를 알리며, 구조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발 벗고 나서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명절 연휴를 앞둔 요즘, 몸은 늘어지고 마음은 해이해지기 십상이다. 이런 때일수록 사고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무심히 지나친 위험은 없는지 먼저 우리 스스로 주변을 살펴보자. 안전에 대해서만큼은 더 이상 방관자가 없기를 바란다. 그것이 건강한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