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과잉·품질 저하로 소비자 신뢰 무너져
올해 10월 도매가 8천원대 전망…농가 울상
'포도계의 에르메스'라 불리며 고급 과일의 대명사였던 샤인머스캣이 끝없는 가격 하락에 직면했다. 주산지인 경북 농가들은 "수익은 줄고 품질 신뢰마저 무너졌다"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 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9일 기준 샤인머스캣(L과·2㎏) 소매가격은 1만8천818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74% 떨어졌다. 평년 대비로는 무려 47.35% 낮고, 2020년 2㎏당 평균 소매가격(4만7천860원)의 절반에 한참 못 미친다.
도매시장에서도 하락세는 뚜렷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샤인머스캣 도매가격은 2㎏당 1만1천404원으로, 같은 무게 거봉(1만5천993원)보다 29% 저렴했다. 올해 10월 가격 전망은 8천원대에 그칠 것으로 예측돼 농가 우려는 커지고 있다.
생산 농가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김희수 한국포도회 경북지부장은 "1송이당 생산비 1천원 이상 투입되는데 남는 건 2천500원 수준에 불과하다"며 "2020년만 해도 7천원까지 수익을 올렸으나 이제는 생산비 보전도 어렵다"고 말했다.
가장 큰 원인은 공급 과잉이다. 샤인머스캣은 초보 농가도 재배가 쉽고 저장성이 좋아 단기간에 재배 면적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2017년 전체 포도 재배면적의 4%에 불과하던 샤인머스캣은 2020년 22%, 2022년 41%로 확대됐다. 지난해에는 44%까지 치솟으며 캠벨얼리(29%), 거봉류(17%)를 훌쩍 넘어섰다. 농가 쏠림 현상이 결국 시장 붕괴를 불러온 셈이다.
문제는 단순히 공급량만이 아니다. 품질 저하가 소비자 신뢰를 무너뜨렸다. 당도가 제대로 형성되기 전 조기 출하가 늘어나면서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맛이 떨어지는 포도가 쏟아졌다. 농업 전문가에 따르면 샤인머스캣은 한 가지에서 500~600g 송이를 키워야 안정적인 당도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농가들이 수확량을 늘리려 800g 이상 키우는 경우가 많아 당도가 낮고 껍질이 질긴 상품이 늘어났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샤인머스캣은 외관이 잘 변하지 않아 미숙한 상태로도 시장에 나오기 쉽다"며 "소비자가 겉모습만 보고 샀다가 맛에서 실망하는 사례가 잦아지면 브랜드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소비자 불만 중 상당수가 '당도가 예전만 못하다', '껍질이 질기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상황에 전국 최대 포도 생산지인 경북에서는 신품종 개발과 해외 판로 개척 등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김주령 경북도 농축산유통국장은 "경북은 포도 재배면적 8천206㏊, 수출량 3천726톤(t) 등 전국에서 각 56%, 78%를 차지하는 '포도 주산지'이지만, 샤인머스캣이 도내 포도 재배 면적의 약 60%인 4천829㏊, 수출량의 약 9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단일 품종에 치중해 있어 품종 다변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레드클라렛, 골드스위트, 글로리스타 등 씨 없고 껍질째 먹을 수 있는 신품종으로 수출시장을 공략 중이다. 2023년 첫 수출길에 오른 레드클라렛은 홍콩, 싱가포르, 미국 등으로 수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