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얼마 전 한 학생문학상 공모전에서 수필집 '각도를 풀다'(2018)의 저자 이혜경 님을 만났다. 책 제목이 좀 특이하게 느껴져 "무슨 뜻으로 이런 제목을 쓰셨지요?"라고 물었고 이 작가는 "마음의 문·각도를 열자"는 뜻이라고 했다. "마음의 각(角), 마음의 문(門)을 연다. 거 참 재밌네요"라고 화답했다.
책은 다섯 부(部)로 나누어져 있고 각 부에는 여덟 편 내외의 수필이 담겼다. 1부에는 유무형의 각종 문·각·경계(境界)를 다루고 있다. '다시 귀를 뚫다'에는 삶의 각 단계의 문, '각도를 풀다'에는 살면서 스스로 좁힌 각, '비밀의 섬, 오륙도'에는 시각(視角)의 각, '공룡은 살아 있다'에는 부부 사이의 경계, '이별에는 핑계가 필요하다'에는 자전거라는 무생물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해학과 반전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문에, 경계에 갇혀있다. 국경이라는 경계를 두고 여러 곳에서 전쟁을 하고 있고, 중국·러시아·일본이 오히려 잠잠하니 자국 이익을 앞세운 미국이 각종 경제적 덤터기를 씌우고 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일흔 해가 넘도록 고생하고 있는 우리 사정을 좀 봐줘도 될텐데 국제 외교는 냉혹하기만 하다.
비상계엄 이후 이념 갈등은 더 첨예해지고,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노(勞)와 사(使)의 의견 차이는 커지는 양상이다. 텔레비전 뉴스 보기가 겁난다. 그래도 어떡하는가? 시민 각자는 자신과 가족의 삶을 부둥켜안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갈 수밖에 없다. 시월이, 그리고 추석이 오고 있지 않은가?
각도를 풀고 경계를 지우는 일이 쉽지 만은 않지만 '각도를 풀다'의 작가처럼 마음을 열고 경계를 지우는 노력을 계속 해야겠다. 그래야 이웃이나 동료에게 더 다가갈 수 있고 사회 내의 첨예한 갈등도 완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경계를 지우기 위해 시민들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가정과 직장에서 임무에 충실한 후, 여가 시간에는 몸과 마음에 더욱 다채로운 경험을 쌓는 것이다. 자신이 즐기는 운동이나 여행을 통해 경험을 쌓으며 마음의 각도를 풀 수도 있겠다. 이혜경 작가처럼 새로운 악기 공부, 즉 새로운 취미 계발에 도전해 볼 수도 있겠다. 대학이나 구(區) 또는 시 도서관에서 열리는 각종 시민강좌에 참여할 수도 있다. 그리고 독서를 통해 타인의 삶을 경험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되리라.
때마침 다채로운 문화 행사를 체험하며 마음의 각도를 풀 수 있는 '2025 판타지아대구페스타'가 다가오고 있다. 김세연 기자의 '15개 축제, 10일간의 문화 향연'(매일신문 3일자 문화면)에는 26일부터 10월 5일까지 대구 전역에서 개최되는 15개의 축제를 소개하고 있다. 이 중 6개 축제는 5일 이후에도 계속되지만 한 군데 몰아서 소개했다. 삶에 자양분을 주고 문화에 침잠(沈潛)할 수 있는 기회다.
작심하고 필자는 모든 축제에 참여해서 프로그램의 일부라도 체험할 생각이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월드오케스트라페스티벌, 대구국제힐링공연예술제, 대구사진비엔날레, 대구간송미술관가을기획전, 달성대구현대미술제가 위 기간과 그 이후에도 열린다.
여기에다 대구포크페스티벌, 대구예술제, 파워풀대구가요제, 동성로청년버스킹, 대구콘텐츠페어, 금호강바람소리길축제, 수성못페스티벌, 들안길푸드페스티벌, 달성100대피아노연주회도 우리를 기다린다.
위 축제 참여를 통해 문 하나라도 열고 경계를 지울 수 있길 바란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서로를 북돋우며 공정하게 경쟁하며 사는 것이 상생(相生)이고, 여기서 더 나아가 서로를 돕는 것이 공생(共生)이다.
마음의 각도를 푸는 이유는 상생으로, 상생을 넘어 공생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마굴리스와 세이건이 공저한 '마이크로코스모스'(홍욱희 옮김, 2011)에 따르면 의식이 없는 세포 간에도 상생을 위해 협력한다고 한다. 세포 간에도 이러하다면 의식이 있는 인간은 마땅히 상생을, 상생을 넘어 공생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모두가 잘 사는 길이 아니겠는가?
이 가을에 마음의 각도를 풀고, 애써 만든 문화 행사를 즐기며, 상생과 공생의 뜻을 생각해 보자.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1995)를 지은 고 전우익 님의 주름진, 그러나 선한 지적인 얼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