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존중, 가정의 가치 중시하는 가치관
출산지원정책 수립 시 수요자인 엄마와 아이의 니즈 제대로 파악해야
박성백(57)·김지현(53) 부부는 '문화창조놀이터 ETC'란 이름의 문화콘텐츠생산자협동조합을 함께 운영한다. 가정의 가치와 가족 간 관계 회복을 미션으로 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곳이다. 여기서 남편은 대표, 아내는 이사다. 둘 다 20여년간 도예가로 활동했지만 예술로는 생활이 힘들어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2015년 이를 만들었다.
슬하에 자녀는 여섯이다. 첫째 하람(건축학과 졸업 후 구직 중), 둘째 하영(어린이집 교사), 셋째 하진(체육학과 휴학 후 군 복무 중), 넷째 하온(대학생), 다섯째 하윤(고등학교 3학년), 여섯째 하준(중학교 1학년)까지 모두 이름이 '하' 자로 시작돼 '하하하 육남매'라 불린다.
◆생명 존중의 가치 실천
부부는 애초에 여섯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거나 결정한 적은 없다. 하지만 세상사 어디 뜻한 바 대로 흘러가던가. 이들에게 자녀 계획이 그랬다. 첫째와 둘째를 낳고 더 낳을 지 말지 고민하던 중 '4차 세계가정대회'(2003년, 필리핀)에 참석하면서 생명 존중과 낙태에 대한 태도를 확고히 갖게 됐다.
"부부 사랑의 결실인 자녀와 생명에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을 듣고 나서다. 박 대표는 "우리 자녀들이 피임에 실패해 어쩔 수 없이 낳게 된 짐이 아니라 우리 두 사람의 사랑의 결과이므로 기쁘게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계획에 열려 있자고 다짐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 후 2, 3년 터울로 아이가 생겼고 지금의 여덟 가족 진용을 갖추기 전 안타깝게도 두 아이는 자연유산으로 하늘나라로 보냈다. 세월이 흘러도 먼저 간 아이들에 대한 아련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부부는 육남매와의 가족회의 끝에 파키스탄과 캄보디아에 있는 두 아이를 지원하기로 했다. 현재 이 아이들에겐 각자의 가정에 머물면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작은 도움을 주고 있다.
◆다자녀가정 향한 주변의 편견은 상처
박 대표는 "솔직히 셋째 아이까지는 괜찮았는데 아내로부터 넷째를 가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기쁨과 함께 두려움도 몰려왔다"고 회고했다. 수입이 변변찮은 대학강사(당시 직업)가 또 아이를 가졌냐고 이웃들이 비웃을까 두려웠고, 주변의 걱정과 인간적인 조언들도 깊은 상처가 됐다.
"젊은 사람들이 대책 없이 낳기만 하면 되나? 부모 노릇도 제대로 해야지 아기 낳는 공장도 아니고..." 등의 얘기를 들을 때면 화도 났다. 하지만 웃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걱정과 불안은 잠시, 기쁨과 감사의 마음이 몰려왔다.
실은 살아보니 부모인 자신들이 아이들로부터 더 많은 사랑과 넘치는 위로를 받을 때가 많다. 육체적인 편안함, 교육과 돈에 대한 걱정(또는 욕심)만 내려놓으면 행복하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데 많은 경우 그걸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협동조합 통해 건강한 가정 만들기 지원
박성백·김지현 부부는 가족, 가정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정이 건강해야 아이들도, 사회도 건강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세상과 사회에서 당당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가고자 노력하는 이들은 다른 사회구성원들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가정과 공동체 모두가 항상, 즉시, 기쁘게 살아가는 사랑 가득한 세상' 말이다.
부부가 운영하는 협동조합은 이런 가치를 실현시키는 작은 장이다. 이 곳에서는 현재 건강한 가정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어린이와 청소년, 65세 이상 시니어 등을 대상으로 하는 맞춤형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성소수자들과 그 가족들이 혐오와 차별로부터 벗어나 단단한 마음 근육을 키우고 살아가도록 돕는 프로젝트도 계획 중이다.
◆자녀에 대한 믿음 갖고 기다려줘야
"공부는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배우고 스스로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박성백·김지현 부부가 한 말이다. 솔직히 아이들 모두 학원에 보내려니 부담이 꽤 됐다. 이런 사정을 아이들도 알았을 것이다. 처음엔 학원에 가지 않으니 함께 놀 친구가 없어 속상해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친구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이 자기라고 하면서 학원에 보내지 않아 고맙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혼자 공부를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떤 아이는 그것이 영원히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응원하며 끝까지 믿고 기다려주니 결국 자신이 원하는 일들을 성취한다는 걸 체험하게 됐다.
지금까지 부부는 양육 및 교육에 있어서도 두 가지 원칙을 꼭 지켜왔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면 뭐든 함께 해주자',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한목소리로 같은 이야기를 하자'가 그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
첫째 하람에게 동생들은 '멀어지지 않을 인연, 소중한 다섯 개의 그 무엇'의 의미다. 동생들이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본인에게는 당연한 현실이라, 장단점을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든든하게 생각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했던 그는 동생들을 다 데리고 학교에 갔던 적이 있다.
왜 그랬는지 몰라도 그때 괜히 친구들한테 자랑하는 느낌도 들면서 뿌듯하고 그랬다. 지금은 집에서 동생들이 막내와 놀고 이야기하면서 이것저것 하나씩 가르쳐주는 걸 보면 '얘네들이 벌써 이만큼 컸나' 싶은 마음이 든다. 부모 같은 마음이랄까 참 보기 좋다.
막내 하준은 "어릴 때 누나와 싸워서 손들고 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벌을 서면서도 누나와 장난치고 웃고 그래서 좋았다"며 "우리끼리 서로 잘 챙겨주고 집이 항상 시끌벅적하니 행복하다"고 했다. 모두 다 같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다자녀가정이다 보니 에피소드는 수없이 많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사건은 아이들이 병설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동시에 4명이나 다닐 때의 일이다. 가을운동회에서 아이들 나오는 순서를 형광펜으로 칠해보니 무려 전체의 3분의 2가 아닌가. 부모도 함께 참여해야 하는데 부부 둘만으로는 이를 맞출 수 없어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동원해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신나는 하루였지만 아이들보다 더 많이 활약하다 보니 다음날 어른들은 모두 몸살이 났다.

◆수요자가 참여하는 저출산정책 만들어야
박 대표는 "젊은이들이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사는 것을 우리 정부와 지역사회가 바란다면 무엇보다 '엄마와 아이가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년 간 정부와 자자체는 출산장려지원정책과 다자녀 지원에 무려 35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아이 없는 나라 세계 1위란 불명예. 이는 이런 정책들이 별반 효과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고 꼬집는 그는 "전문가, 정책 입안자, 활동가, 공무원들이 만들어 가는 정책과 지원이 아닌, 엄마와 아이들이 필요로 하고 요구하는 것들을 현실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엄마와 아이 즉, 가정을 만들어 가는 주인공들이 제외되고 빠져있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박 대표는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저출산문제에 접근한다면 가장 빨리 그리고 쉽게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과연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기 위해 아이를 낳는 부부가 몇 명이나 되는지, 젊은 부부들이 지원과 정책이 충분치 않아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인지 원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자녀를 많이 낳아 기르는 부부들은 모두 물려받은 재산이 많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일까 하는 질문도 던져보길 바란다"며 "어쩌면 저출산문제를 풀 답이 이들에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