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재난지역 선포, 중소기업 특별지원지역 지정 등 '응답해야'
지난달 3일 영천시 채신공단에서 발생한 화학물질 공장 폭발·화재 사고는 단순한 산업재해가 아니다.
근로자 1명이 목숨을 잃고 3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1천억원이 훌쩍 넘는 재산 피해를 냈다.
또 진화 과정에서 흘러나온 화학물질 오염수가 청못 저수지로 유입되면서 물고기 떼죽음과 농업용수 공급 중단이라는 환경 재앙으로 이어졌다. 국보로 승격된 청제비와 국가 사적 지정 절차가 진행 중인 청못 저수지의 가치마저 훼손될 위기다.
영천 시민들에게 이번 사고는 산업, 환경, 문화유산은 물론 지역 경제가 동시에 큰 타격을 입는 전형적 복합 재난으로 각인되고 있다.
영천시, 경상북도,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DGFEZ) 등이 연이어 대책 회의를 열고 지원책을 내놨지만 가장 절실한 국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은 정작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피해 기업과 지역민들에게는 한시가 급한 생존의 문제인데 행정은 여전히 절차와 원칙에 묶여 특별재난지역 선포와 중소기업 특별지원지역 지정 같은 과감한 조치가 미뤄지고 있다.
정책적 제안은 분명하다. 첫째, 특별재난지역 선포다. 영천시에 접수된 피해액은 이달 3일 현재 38개 기업에서만 1천22억원에 달하고 유무형의 피해를 더하면 1천5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일부 기업은 존폐 위기에 내몰려 있기도 하다.
현행법상 특별재난지역은 천재지변이나 대형 사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역 경제와 생계 기반이 붕괴된 이번 사고야말로 선포 요건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세금 감면, 공공요금 감면, 각종 융자 지원 등이 이뤄져야 신속하고 실질적인 회복이 가능해진다.
둘째, 중소기업 특별지원지역 지정이다. 사고 공장의 보험 한도는 250억원 남짓에 불과해 피해 기업들은 사실상 보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특별지원지역으로 지정되면 금융권을 통한 저리 자금과 보증 지원이 확대되고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도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금융 지원이 아니라 피해 기업의 경영 악화를 막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셋째, 환경 복원 및 문화유산 보존 특별 대책이다. 청못 저수지는 단순한 농업용수가 아니라 국보 청제비와 맞닿은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저수지다.
지금처럼 지방자치단체가 뒤늦게 오염수 퍼내기와 방제 작업만 반복해서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가 차원의 환경 복원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국가유산청·환경부 등이 함께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꾸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화학물질 취급 공장에 대한 안전관리 전면 재점검이 필요하다. 이번 사고는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 구조, 부실한 위험물 관리, 초기 대응 실패가 겹친 인재(人災)였다.
화학물질을 다루는 모든 공단에 대해 긴급 안전진단을 실시하고 안전관리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 역시 철저히 조사해 책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고는 영천시 한 지역의 불행으로 끝날 일이 결코 아니다. 전국 곳곳의 산업단지가 가진 구조적 위험을 보여 주는 경고음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고 원인 조사 후 대책 검토'라는 늑장 행정이 아니라 제도적 결단이다.
특별재난지역 선포, 중소기업 특별지원지역 지정, 환경·문화재 복원 대책, 화학물질 안전관리 강화 등은 이번 재난이 남긴 분명한 과제다.
불길은 꺼졌지만 상처는 깊다. 그리고 상처를 덮는 방식은 땜질식이 아니라 제도와 정책으로 보상하고 예방하는 길뿐이다. 이번 사고의 비극을 전국적 교훈으로 삼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