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브이 조종사와 한국 재정의 미래 [가스인라이팅]

입력 2025-09-07 11:5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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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은 공직 사회를 '로보트 태권브이'라고 했다. 태권브이는 강력하지만 조종사의 조종에 절대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특히 관료의 정보 접근 권한이 민간을 압도하는 분야에선 조종사가 누구냐가 훨씬 중요해진다. 나라의 곳간을 관리하는 '재정'은 기획재정부가 정보와 권한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태권브이 조종사론'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다.

문재인 정부는 기재부 관료를 이용해 2020년 제2차 장기재정전망을 조작했다. 감사원이 지난해 6월 공개한 감사보고서를 보면 이들이 청와대 지침에 따라 통계를 어떻게 왜곡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기재부 관료들은 청와대와 홍남기 전 부총리의 지시가 부당하다고 인식하고 심지어 '역사에 죄를 짓는 것' 이라는 대화를 하면서도 상부 지시에 따라 국민을 호도하는 자료를 만들었다.

홍 전 부총리는 2060년 국가채무비율을 인위적으로 두 자릿수로 보이게 하려 "재량지출증가율이 아니라 총지출증가율을 명목GDP성장률에 100% 연동하도록 바꾸라"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다. 국가재정 지출엔 의무지출과 재량지출이 있는데 그간 국가재정 전망의 핵심 전제는 "재량지출증가율을 명목GDP성장률에 연동한다"였다. 현재 재정지출은 의무지출과 재량지출 비율이 각각 50% 정도 된다.

쉽게 말해 홍 전 부총리 말은 "재량지출만 기준으로 하던 전제에 의무지출까지 포함한 '총지출'을 명목GDP성장률에 연동하라"는 지시였다. 이러면 미래의 재량지출증가율이 억제돼 국가채무비율이 낮아진 것처럼 보인다. 인구 고령화로 의무지출은 가파르게 상승할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문 정부의 확대 재정 기조까지 계속된다고 가정하면 국가채무비율이 너무 높게 전망될 테니 미래 정부는 재량지출을 급격히 줄일 것이라는 전제를 사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당초 실무자가 복수안 153.0%과 129.6%으로 보고했던 2060년 국가채무비율 전망치는 홍 전 부총리 지시와 청와대 승인을 거친 뒤 81.1%로 조작 발표됐다. 문 정부는 이 조작된 국가채무비율을 근거로 예산 확대 잔치를 벌였다. 같은 시기 국회 예산정책처가 전망한 건 158.7%, 감사원이 재추계한 비율은 148.2%였다.

이재명 정부의 첫 예산안이 지역사랑상품권 같은 비과학적 예산이 대거 포함된 슈퍼예산으로 편성되면서 정부의 곳간열기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기재부는 최근 제3차 2025년~2065년 장기재정전망을 발표했다. 기재부는 2020년 전망치 조작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를 수용해 기존의 '재량지출증가율을 명목GDP성장률에 연동한다'는 전제로 돌아갔고 2065년 국가채무비율을 156.3%로 전망했다.

그런데 제3차 장기재정전망과 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비교해 보면 누군가가 로보트 태권브이를 또 교묘히 조종하고 있는 것 같다. 장기재정전망엔 이 정부가 끝나는 2030년부터 재량지출이 GDP 대비 11.5%에 수렴해 고정될 것으로 가정됐는데 얼마 전 제출된 2026년 예산안을 보면 재량지출로 GDP 대비 12.4%를 쓰겠다고 돼있다. 0.9%p 차이가 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약 25조 원이다.

25조 원을 보자마자 놀라웠다. 이 정부가 추경 포함 올해 예산 대비 내년 예산안에서 증액한 금액이 딱 25조 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현 정부는 재량껏 쓰지만 차기 정부는 쓰지 않는다'는 가정을 똑같이 깔아둔 셈이다. 기재부가 사용한 '2030년 이후 GDP 대비 재량지출 11.5% 유지'라는 전제를 선의로 해석하면 '다음 대통령은 이 대통령만큼 무책임하지 않다'는 의미가 된다. 2065년을 살아야 하는 세대 입장에서 이 가정이 반드시 지켜지면 좋겠다. 민주당식 재정 확장이 계속된다면 한국은 미래 세대가 감당할 수 없는 나라가 된다.

조상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정책보좌관 / 법률사무소 상현 대표변호사

조상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정책보좌관 / 법률사무소 상현 대표변호사
조상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정책보좌관 / 법률사무소 상현 대표변호사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