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과일 코너에서 필자는 "오징어카드" VIP들이 머리 위 카메라를 통해 나를 지켜보며, 샴페인을 홀짝이며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사과는, 맞는 카드를 긁으면 11,990원, 현금이면 14,990원. 게임에 참여할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삶의 할인이었다.VIP들이 웃으며 서로의 "오징어카드"를 내세워 내 빚을 두고 다투고, 모엣 샴페인이 계속 흐르는 사이에 사이드 베팅을 거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하지만 이런 카드 할인은 과자나 라면 같은 군것질거리에는 없었다. 생필품이 아닌 물건에도 없었다. 오직 신선한 과일과 채소, 곧 생명을 유지하는 식품에만 적용됐다. 아이들, 심지어 가난한 아이들도 자라기 위해 꼭 필요한 음식 말이다.
그러나 카드 결제로 만들어지는 "돈"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화면 속 숫자로만 잠시 생겨난 허상일 뿐이다. 하지만 갚지 못하면 휴대폰, 자동차, 심지어 집까지도 빼앗긴다. 그렇게 압류된 자산은 실제 현금으로 팔린다. 빚은 허공에서 만들어지지만, 벌은 현실에서 내려진다. 부가 위로 흘러 올라가는 이 아이러니. 의도된 결말일까?
카드 할인은 마치 가게의 선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발급사가 수수료를 보전하거나 면제해주기 때문에 마트는 손해를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VIP들이 내 사과 값을 내줄까? 사과는 미끼이기 때문이다. 싼 과일이 장바구니를 크게 만들고, 그만큼 결제 수수료가 카드사 VIP에게 들어간다. 사용이 습관이 되면 일부는 뒤처지고, 이자에 눌린다. 진짜 이익은 바로 거기에 있다.
하지만 현금 사용자들은? 대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거나 한때 신용카드에 유혹당했다가 빚을 감당하지 못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같은 사과를 사면서도 3,000원을 더 낸다.
작은 동네 마트에서는 같은 과일이 조건 없이 할인된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즉, 카드 이용자가 할인을 받는 게 아니라 본래 가격을 내는 것이고, 불응한 가난한 사람만 벌을 받는 셈이다.
우리는 오징어카드 VIP들이 마트 본사 냉동창고 밑 비밀 벙커에 모여 이런 계획을 짜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학력은 높지만 도덕은 바닥인 임원들이 더 높은 이익과 두둑한 보너스를 자축하며, 그 사이 너무 많은 아이들은 아침조차 못 먹고 학교에 간다.
한편 이 게임에 맞설 유일한 무기, 현금은 사라지고 있다. 2019년 이후 한국의 은행 지점1,000여 곳 넘게 문을 닫았고, 올해만 76곳이 추가됐다. 지점 하나가 사라질 때마다 우리는 규칙이 불리하게 짜인 디지털 경기장으로 더 깊이 밀려난다.
이건 새로운 일도 아니다. 2002년 서울의 한 외국계 카드사 임원은 내게 거의 하소연하듯 고백했다. "한국인들은 너무 절제돼 있어서 카드 대금을 제때 갚아버리니, 이자로 남는 게 없다." 그러나 그 절제는 곧 "교정"되었다. 더 많은 신용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그 광기는 2004년, LG카드가 12조6천억 원의 부채로 무너져 수십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불러올 때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누가 그 대가를 치렀는가? 이미 카드빚에 눌려 있던 서민 납세자들이었다. VIP들은 돈을 돌려받았고, 게임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5년 5월 기준 신용카드 연체율은 2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취약한 차주들이 큰 압박을 받고 있다는 신호다. 현재 한국의 가계부채는 1,952조 원, GDP의 91%에 해당한다.이 엄청난 숫자를 우리는 제대로 감각하기 어렵다.돈이 아니라 시간을 상상해보자.1,952조 초라면 약 6,200만 년이다. 공룡이 멸종한 직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정부 규제기관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경쟁한다는 카드사들이 어떻게 똑같은 게임을 벌이고 있는가? 경쟁이 담합이 될 때, 소비자는 언제나 패배한다. 혹은 애초 목표가 현금 없는 사회일지도 모른다.모든 거래가 감시되고, 반대하는 자는 키보드 한 번으로 차단될 수 있는 사회 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경제의 오징어 게임이다.더 이상 디스토피아 소설 속 공포가 아니다. 마트의 할인과 사라진 은행 지점은 모두 조작된 게임의 신호다.빚은 허공에서 만들어지지만,그 벌은 철처럼 무겁다. 6,200만 년의 빚, 샴페인을 들이키는 VIP, 그리고 우리 나머지는 사과 하나를 쟁취하려 애쓰고 있다.

앤서니 헤가티 범죄심리학자.DSRM 리스크 & 위기관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