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는 개원 15개월 만에 1만2천600건이 넘는 법안을 발의하며 헌정사상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발의 건수로만 따지면 영국이나 일본의 100배도 훌쩍 넘는 압도적인 양이다. 겉으로 보기엔 국회의원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입법 활동을 하고 있는 걸로 보이기도 한다.
어떤 의원이 가장 열심히 일하나 뜯어보다가 재미난 걸 발견했다. 지난 21대 국회 때 법안 발의 1위는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이 가운데엔 지방(地方)이라는 단어를 지역(地域)으로 일괄 변경하는 등의 '용어변경형' 발의가 한두 건이 아니었다. 민 의원은 미처리 법안 수도 1위를 하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22대 국회에선 어떨까. 현재 민 의원의 법안발의량은 총 179건으로 2위다. 평일 기준 2일에 1건씩 법안을 발의했다. 그런데 결과는 그닥 좋지 못하다. 법안 처리율은 9%로 208위다.
'트렌드 용어형' 법안이 줄줄이 나오는 현상도 자주 보였다. K-컬처와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 유행 법안이 하나 발의되면 너도나도 완성도가 낮은 유사 법안을 대거 쏟아냈다. 22대 국회에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인공지능기본법을 발의하자 김성원·민형배·정점식·조인철 의원 등이 유사법안을 18건이나 만들어냈다. 물론 각 법안마다 입법 취지는 조금씩 달랐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차이점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보여주기식 입법'이 국민 삶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는 소극적 문제라면 선의의 탈을 쓴 채 국민 삶에 족쇄를 채우는 '여론 잠재우기용 법'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2021년 통과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재 사망사고 감소를 목표로 했으나 지난해 산재 사망자수는 법 시행 전인 2021년보다 오히려 0.9% 증가했다. 실효성 있는 산재 예방 효과는 없이 면책을 위한 형식적 안전 관리 비용만 늘었다는 것이다.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우르르 입법만 반복하는 게 우리 입법부의 현주소다.
이렇게 무분별하게 양산되는 법의 족쇄를 끊기 위해서는 입법영향평가제 도입 등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국민 개개인이 감시자이자 분별자 역할을 도맡는 것이다. 언론과 시민단체는 단순히 법안 수에 매몰되지 말고 해당 법이 실제 국민 생활 향상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 입법량과 현란한 '무슨 무슨 법 통과' 현수막 뒤에 숨겨진 책임의 사슬을 단단히 붙들어야 진정한 민주주의와 민생 중심 입법이 시작된다.
박성준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