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오정일] 경북대, 줄여야 산다

입력 2025-09-10 1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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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일 경북대 교수회 의장

오정일 경북대 교수회 의장
오정일 경북대 교수회 의장

2000년 76만 명이던 전국 고교 졸업자는 2024년 39만 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대구·경북도 예외는 아니다. 같은 기간 지역의 고교 졸업자는 9만 명에서 3만 9천 명으로 58% 감소했다. 고교 졸업자가 줄면 대학도 정원을 줄이는 것이 상식이다. 경북대 정원은 2015년 4,958명에서 2024년 5,041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지난 10년 동안의 고교 졸업자 감소를 반영한다면, 경북대 정원은 2천 명으로 줄었어야 한다.

지역의 다른 대학은 정원을 줄였다. 경북대를 제외한 대구·경북 4년제 대학 정원은 31,372명에서 28,260명으로 10% 감소했다. 이에 따라 경북대 쏠림이 심해졌다. 대구·경북 고교 졸업자 대비 경북대 정원은 2015년 7.7%에서 2024년 13%로 크게 높아졌다. 지역 4년제 대학 정원 중 경북대가 차지하는 비율도 13.6%에서 15.1%로 상승했다. 경북대 수시 경쟁률이 10 대 1을 넘어섰으나, 지역 내 다른 대학은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경북대 규모는 적당한가? 아니면 과잉인가? 서울대와 비교하면 과잉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2025년 'U.S. News & World Report'의 대학 순위에 따르면, 서울대는 국내 1위이지만 세계 135위에 불과하다. 어쨌든 서울대가 우리나라에서 교육 여건이 좋은 대학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경북대는 서울대보다 학생이 훨씬 많다. 서울대의 교수 대비 학생 비율에 맞추려면 정원을 2천 명으로 줄여야 한다. 현 정원의 60%를 감축해야 한다. 정원을 유지하려면 교수를 3,400명까지 늘려야 한다. 이는 현재 인원의 2.4배에 해당한다. 교수 대비 학생 비율을 보면 경북대 규모는 과잉이다. 예산은 더 심각하다. 경북대가 학생 1인당 예산을 서울대 수준에 맞추려면 정원을 1,300명까지 줄여야 한다. 현 정원의 25%만 남겨둬야 한다. 현 정원을 유지하려면 예산을 3배로 늘려야 한다.

옛날에는 학생은 많고 대학이 적었다. 그래서 국립대 역할이 컸다. 요즘은 대학이 많다. 국가장학금 확대로 등록금 부담도 줄었다. 국립대가 사립대와 경쟁하는 시대가 됐다. 이른바 거점 국립대는 수도권 대학에 학생을 뺏긴다고 하지만, 지역 내에서는 학생을 뺏고 있다. 결과적으로 경북대는 대구·경북 고등교육 생태계의 정점(頂點)에 서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성장에 익숙했다. 키우는 데 능하지만, 줄이는 데는 아직 서투르다. 이제 성장의 시대는 끝났다. 모든 조직이 몸집을 줄여야 한다. 몸집을 그대로 유지하면 붕괴한다. 무너질 때까지 버티면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성장 전략이 아니다. '관리된 축소'(managed shrinkage)가 요구된다. '관리된 축소'는 버릴 건 버리고 지킬 건 지키는 전략이다. '관리된 축소'는 조직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로 선정됐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9개 거점 국립대 수준을 끌어올려서, 10년 안에 3곳 이상을 세계 100대 대학에 진입시킨다는 구상이다. 앞으로 5년간 4조 원이 넘는 재정을 투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정원 감축이 있어야 한다. 정원을 그대로 둔 채 예산만 늘리면 효과가 없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다. 이미 여러 번 경험한 실패 공식(公式)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서울대 수준의 연구 기반, 교육 인프라, 교수진을 9개 거점 국립대로 이전해서 '지역별 서울대'를 만드는 것이다. 이들이 지역 발전의 동력(動力)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하지만 고등교육 재정은 늘지 않는 데 국립대만 지원하면 사립대는 더 위축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지역 간' 격차 해소에 기여겠지만, '지역 내'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거점 국립대인 경북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한다. 경북대는 대구·경북의 중심이지만 모든 짐을 떠안을 필요는 없다. 몸집을 줄여서 '지역 내' 격차 해소에 앞장서야 한다. 나아가 지역 사립대가 감당하기 힘든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것이 거점 국립대의 사명인 '공공성'이다. 경북대는 세금의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