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희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연구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화제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뜻의 이 말은 아무리 아름답고 강한 권세도 오래가지 않으며 결국 시들고 마는 것이 세상의 이치임을 상징한다. 이 표현은 중국 당나라의 시인 유우석(劉禹錫)이 지은 시 「금릉회고(題金陵懷古)」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시구는 한때 찬란했던 남조의 수도 금릉(지금의 난징)이 몰락한 역사적 배경을 배경으로 삼고, 권세와 영화가 결국 유한한 것임을 읊고 있다.
이 말은 단순히 자연의 순환이나 덧없음을 읊은 감성적인 시어가 아니다. 오히려 '화무십일홍'은 권력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며, 정치와 사회를 바라보는 중요한 렌즈가 되어 준다. 고려 말 권문세족의 쇠퇴, 조선시대 당쟁의 폐해, 현대 정치사에서 나타난 수많은 정권 교체의 역사를 돌아보면, 찬란한 꽃이 시드는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왔고 그 무상함은 결코 예외를 두지 않았다. 화무십일홍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반복되어 온 권력의 이력서이자, 인간 사회의 정치적 순환을 은유하는 진실이다.
최근 김건희 여사가 언급한 이 표현이 다시금 사회적 주목을 받고 있다. 단지 한 문장을 인용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말이 던지는 상징성과 묵직한 울림은 현 시국을 관통하는 의미로 확장되어 해석되고 있다. 정쟁과 분열, 의혹과 대립으로 가득 찬 정치의 현주소 앞에서, 국민들은 더 이상 과거의 반복이나 책임 회피에 머무는 정치를 용납하지 않는다. 정치가 유한하고 국민이 영원하다는 진실은 단지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 사회는 전환의 문턱에 서 있다. 기술, 산업, 외교,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복합적 위기와 기회의 갈림길에 놓여 있으며,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정치의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권은 여전히 소모적인 정쟁에 갇혀 있으며, 당리당략에 매몰된 채 국민적 신뢰를 상실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느 쪽이 더 잘못했는지를 따지기 전에 과연 정치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정치는 원래 미래를 설계하고 공동체의 삶을 조율하는 고도의 책임 행위이다. 단기적 이익과 감정적 대립이 지배하는 정치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꽃의 절정 뿐이며, 그것이 시든 뒤의 황폐함은 고스란히 국민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그러므로 지금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스스로가 '화무십일홍'임을 자각하고 그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다. 덧없음을 깨달은 자만이 겸손해질 수 있고, 겸손한 정치만이 국민과 함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정치는 이제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기후위기 대응, 복지체계 재정비 등 대한민국이 직면한 문제들은 더 이상 과거의 방식이나 낡은 이념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혁신과 포용, 협력과 공존을 중심에 둔 정책과 제도, 그리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정치문화의 혁신이 필요하다. 정치는 한 사람의 꽃이 붉게 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봄을 맞이하는 공동체의 꽃밭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화무십일홍은 지금 정치가 반드시 새겨야 할 경구이다. 권력의 자리에 있는 이들은 더욱 그렇다. 권좌에 있을 때일수록 더 낮은 자세로, 더 멀리 내다보며 국민을 위한 일에 헌신해야 한다. 그것이 곧 정치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권력의 영속을 위해 국민을 갈라 놓고 미래를 미루는 정치는 지속될 수 없다. 국민은 이제 그 너머를 보고 있고, 정치도 그 너머로 나아가야 한다.
'열흘 붉은 꽃'의 끝에서 새로운 싹이 자라나듯, 지금의 위기를 넘어 다시 시작하는 정치는 가능하다. 그것은 '지금 여기'를 겸허히 직시하고, 국민을 향해 책임 있게 나아갈 때 비로소 가능하다. 정치는 꽃이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꽃이 진 자리에서 다시 피어날 수 있도록 토양을 가꾸고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미래는, 덧없음을 인정한 이들이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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